고민하는 힘, 강상중, 사계절출판사, 2013(116)

 

 

 

 물론 '무엇이든 알고 있는 박식한 사람'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성''박식한 사람'이나 '정보통'과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다(know)' '사고하다(think)'는 다릅니다. '정보information' '지성intelligence'은 같지 않습니다.

 

 

 

'해답이 없는 물음을 가지고 고민한다.' 그것은 결국 젊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달관한 어른이라면 그런 일은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청춘이란 한 점 의혹도 없을 때까지 본질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말에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무엇을 믿으면 좋은가'라는 물음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닌 마음의 문제의 대부분은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신앙을 의미하는 '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 제도화된 종교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 즉 종교라는 것은 '개인이 믿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믿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의 생활 그자체였기 때문에 종교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는 설득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무엇을 믿으면 좋을까?'라는 물음 자체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매우 행복한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유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또한 <>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구원을 받고 싶다"고 갈망하며 종교에 귀의했지만 결국 믿음을 얻지 못하고 속세로 돌아오는 지식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평생 자기 분별을 의지하며 살아왔다. 지금 그는 스스로 존중했던 그 분별이 유감스러웠다. 처음부터 취사선택도 유추도 허용하지 않는 어리석은 외골수가 부러웠다. 또한 신념이 굳은 선남선녀들이 지혜도 잊고 유추도 하지 않으며 정진하는 것을 숭고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오랫동안 문밖에서 서성이는 운명을 타고난 느낌이었다....... 그는 문을 지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문을 지나가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해가 지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랑은 그때그때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려는 의지입니다.

 

 

 

 나는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반대로 '각오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쇠퇴'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려울 것은 없다. 이렇게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이를테면 '자기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면 무턱대고 이런저런 일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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