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 사계절출판사, 2012(1판5쇄)
'진짜 자기를 찾아라.'
이것이 때로는 강박관념이 되어 사람을 몰아붙이는 경우가 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치관에 비추어 '이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 '좀 더 빛나는 진짜 내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고통스럽게 뒹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진짜 찾기의 공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진짜 찾기는 신경을 몹시 피곤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는 절대로 손이 닿지 않는 목표를 저편에 세워 놓고 영원히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헤겔이 말하는 '불행한 의식'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시 일본은 서양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그대로 받아 옮기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소세키가 "눈물을 머금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미끄러져 가지 않으면 안 된다"(강연 <현대일본의 개화>,1911)고 말한 것은 유명합니다.
소세키나 베버가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무서울 정도로 사회의 앞날을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저항해도 세상은 이런 식으로만 움직인다는 역사의 간지奸智 같은 것을 그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명대사 "조심하라, 악마는 나이를 먹었다"처럼 그들은 시대를 꿰뚫어보았던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24시간 전 세계를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히라는 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진짜 자기라는 것에 진정으로 집착한다면, 오히려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를 찾아라'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겠지요.
소세키만이 아닙니다 1장에서 소개한 『행복론』을 쓴 알랭이나 영국의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 등도 자기에게만 흥미를 갖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반대로 '자기를 찾아라'라고 외치며 우리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이 빈틈없는 마물 같은 시스템은 '상품이 되는 것'을 찾아내 이용하는 데 매우 뛰어납니다. 특히 '불안'의 냄새가 나는 것을 이용하는 데 무척 뛰어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돈과 먹을 것만 있으면 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런 점에서 실마리가 되는 것이 '개인적 공명personal resonance'이라는 사고입니다.
... 그리고 '개인적 공명'이라는 말에서 저는 소세키를 떠올립니다.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대에 고독한 영혼끼리 공명하는 무언가는 『마음』에서 '선생님'과 '나' 사이에 오고 간 것이 아닐까요.
원전은 지진도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지는 '악마의 공장'이고, 주위의 생물 환경에 위협을 가하면서 100년, 1000년 해체할 수도 없는 '추악한 기념비'로 계속 남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슈마허의)안목입니다.
그런데 저도 '이키즈쿠리*'를 아주 좋아했지만, 어느 날 생선도 '통증'을 느끼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이키즈쿠리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회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아무래도 이키즈쿠리에는 젓가락을 댈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완전히 노동력으로 상품화되어 있는 인간도 어쩐지 이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장이라는 이름의 도마 위에 올라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발라진다고 하면 소름이 끼치지만, 그렇게 되고 있다는,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 먹히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 이케즈쿠리라고도 한다. 생선을 살아 있는 상태로 회를 쳐서 다시 원래 모양대로 꾸민 요리.
우리는 보통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고,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소극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쪽으로만 시선을 향하고 마는 것인데, 인간에게 정말 귀중한 것은 사실 미래가 아니라 과거가 아닐까요.
과거의 축적만이 그 사람의 인생이고, 이에 비해 미래라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제로 상태입니다. 미래는 어디까지나 아직 없는 것이고 무無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유일성'입니다. 인간은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인생에 맞서는 태도라는 의미에서는, 프랑클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 말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박해를 받아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이 가혹한 나날 속에서 만든 노래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하지만 프랑클의 주장은 정반대입니다. 인생이란 "인생 쪽에서 던져오는 다양한 물음"에 대해 "내가 하나하나 답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 자신이 꿈속에서 제조한 폭탄을 껴안고 한 사라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껴안고 있는지 다른 사람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병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유럽의 전쟁도 아마 어떤 시대부터 계속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계속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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