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쿡- 누들로드 PD의 세계최고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이욱정, 문학동네, 2012(초판발행)

 

 

 

 

 "이 교실에 있는 많은 학생들이 평생 셰프의 길을 가리라 꿈꾸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 오직 5퍼센트만이 셰프로 은퇴 할 수 있을 겁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스타가 되기를 원한다면 어서 다른 길을 택하십시오."

 

 

 

 요리사가 되는 과정은 두려움과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튀김요리라도 할라치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기름 솥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지레 겁을 먹고 멀찌감치 서서 음식을 던져 넣었다가는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기름에 혼비백산하게 된다.

 

 

 

 무딘 칼이 위험하고 날 선 칼이 안전하다는 것, 뜨거운 것이 두려울수록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것. 주방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그 아이러니를 먼저 배워야 한다.

 

 

 

 세상의 식당주인(또는 셰프)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사업가, 범죄자, 성자. 맛있는 음식을 비싸게 팔거나, 맛없는 음식을 싸게 파는 식당주인은 사업가다. 엉터리 같은 음식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파는 것은 사기에 해당되므로 범죄자에 가깝다. 반대로, 좋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토니 같은 식당주인은 만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에 성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 뭘까? 내 생각에 프랑스인들이 요리를 단순히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진지한 사유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요리를 음악이나 미술작품과 같이 음미하고 비평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요리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일찍이 표준화하고 체계화했다.

 오늘날 전 세계 주방에서 통용되는 직급체계, 분업방식, 조리용어를 고아한 곳도 프랑스요, 식탁 에티켓과 서비스 매뉴얼, 근대적 레스토랑의 틀을 처음으로 만든 곳도 프랑스다. 태권도장이 전 세계 어디에 있어도 '차렷' '경례' 구령은 한국어로 해야 하는 것처럼, 전 세계 레스토랑 주방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공용어는 프랑스어다.

 

 

 

 요리가 예술로 인정받으니 그것을 만드는 요리사에 대한 대접도 달라질 수밖에. 셰프가 새하얀 유니폼과 왕관 같은 셰프 모자를 갖춰 입고 홀로 나와 "오늘 식사 어떠셨습니까?"하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넨 것도 프랑스가 처음이었다.

 

 

 

 그는 야박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알뜰한 사람이었다. 요리촬영을 할 때도 양파 반 개, 마늘 한 쪽 낭비하지 않았다. 카메라가 꺼지면 남은 식재료들을 주섬주섬 챙겼다가 나중에 사용하는 사람이 켄이었다.

 

 

 

 고든 램지의 대답은 이랬다. "당신은 조르죠 아르마니가 아르마니 정장에 직접 재봉질을 했다고 생각하슈?" 고든 램지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고든 램지가 만든 콘셉트의 요리를 먹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 고든 램지가 직접 조리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과 학생들이 블록버스터 감독을 무시하듯 요리사 지망생들은 텔레비전 셰프를 우습게 여기지만, 요리사에 대한 대중의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결과적으로 요리사의 지위를 상승시키는 것은 바로 이들, 텔레비전 셰프들이다.

 

 

 

 해산물요리로 유명한 영국의 셰프릭 스타인은 쿠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짧은 정의를 내렸다. "요리는 한마디로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이다! In short, Cooking is Organizing!" 유학을 떠나기 전 일본인 셰프에게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 요리사가 되는데 유리한지 물어보았을 때도 그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나는 하나의 접시에는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성품과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다. 꼼꼼하고 여성스러운 성격을 가진 친구의 요리는 맛과 모양이 섬세했고, 투박하고 털털한 친구의 요리는 모양새는 거칠어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왜 이럴까? 초고압 스트레스 때문이다. 집에서 취미 삼아 요리할 때는 갱스터랩을 할 상황이 없다. 콧노래를 부르며 느긋하고 즐겁게 만들면 된다. 하지만 뜨겁고 날카롭고 시끄러운 것들로 가득 찬 실습실 주방에서, 채 반 평이 되지 않는 조리대를 사수한 채, 마감시간에 쫓기며, 경쟁자들과 어깨를 부딪칠 때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나아졌다지만 주방은 어쩔 수 없이 마초들의 세계다. 주방에서는 버섯이 없다고 해서 "미안합니다만 제가 버섯이 없는데 그쪽에 있는 버섯 좀 건네주시겠습니까?"와 같은 길고 예의바른 문장을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빌어먹ㅇ르 버섯 내놔!"가 보통이다.

 

 

 

 요리학교는 '요리사가 되기 위한 과정'인 동시에 '요리사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과정'인지 모른다.

 

 

 

  32시간 노동제가 일반적인 유럽 국가에서도 요리사는 주 80시간 근무가 보통이다. 남들이 놀 때 일하는 직업의 특성상 상대적 박탈감은 큰 만면 장시간 노동을 견디는 대가로 받는 월급은 턱없이 적다.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버틸 수 없는 직업인 셈이다.

 

 

 

 <누들로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인터뷰했던 일본 전문가의 말이 생각났다. "냉면 같은 국수는 한국 이외에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가장 독창적인 한국의 국수다." 식탁의 세계에서 독특함은 종종 높은 진입장벽을 의미한다. 혀처럼 보수적인 신체기관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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