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감각 기르기, 요네하라 마리, 마음산책, 2013(1판3쇄)
수를 셀 때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사람이 책에 썼죠. 머릿속에서 소리를 내어 수를 세는 사람과 수를 세면서 잡담을 할 수 있는 사람.
동시통역의 훈련법에는 수를 세면서 단어나 문장을 읽어나가는 것도 있어요. 수를 다 센 다음에 무슨 내용이었는지를 말하는 거예요.
제 친구가 요네하라 마리 씨의 혈액형은 B형이 아닐까 하고 얘기하기에, 메일로 물어본 적 있죠? 그랬더니 "인류를 네 종류로 분류하는 바보하고는 친구가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저는 O형 이에요"라는 답장이 왔죠.
친구를 선택하려면 책을 읽고, 6할의 의협심과 4할의 정열이라고 했어요. 책을 읽는 것도 친구의 조건으로서 중요하죠?
그렇죠. 책을 안 읽는 사람은 현실적인 데다 사고에 깊이가 없으니까.
프라하의 학교는 50여개국의 아이들이 책상을 나란히 하고 공부했지요. 모두 서로 다른 것이 당연했어요. 공통점이 있으면 기뻐할 정도였죠.
언젠가 자동번역기를 개발하는 학자를 만났을 때, 맨 먼저 물어본 말이 말장난의 번역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어요. 불가능하다고 답하시더군요.
뇌는 구조적으로 거짓말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가령 기억력이 뛰어난 노인이 옛날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해도, 그건 절대로 진실이 아니에요. 추억을 되씹으며 자신이 지어낸 기억을 저장한 거죠. 지어낸 이야기가 기억이 되는 거예요.
항상 물건을 사라는 자극을 받고 있으니까 사지 않으면 가난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지, 물질적으로는 지금보다 줄어도 결코 가난한 게 아니죠.
9월 16일에 이루어진 미국의 NBC TV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공동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국민의 81퍼센트가 '군사보복에 신중한 자세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해요.
이 사실을 일본의 매스컴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죠. 이것을 보도한 건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밖에 없었어요. 미국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도 열심히 생각해서 그런 의사 표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시하고, 일본에서는 전쟁을 선도하는 보도 일색이었죠. 자극적일수록 신문도 팔리고 TV도 보니까, 그야말로 상술인 거죠.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들은 테러의 아픔을 가장 잘 아니까 헌혈을 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런 테러 공격이 있었을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뻐하는 영상을 CNN이 전 세계에 내보냈잖아요. 하짐나 그런 사람은 정말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들이 말하더군요.
난 회의 통역 일을 하잖아요. 인도인이 말을 시작하면 질려버려요. 국제회의에서 인도인을 입 다물게 하고 일본인의 입ㅇ르 열 수 있으면 훌륭한 의장이라는 말들을 하죠.(웃음)
다만 일본인은 모두 똑같이 만드는 것이 평등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이상했어요. 다름에도 불구하고 평등 혹은 대등한 것이 진정한 평등인데,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도 고등학교나 대학에 보내는 식인 거죠. 대졸도 중졸도 대등하다는 점이 더 중요한데.
모두들 공무원을 비판하면서도 자녀는 공무원을 시키고 싶어 해요. 그럴 바엔 차라리 국민 전부를 공무원으로 만드는 게 어떨까요? 일본인은 경쟁을 싫어하죠. 시장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기보다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 경쟁 없이 공공사업에 참여해 세금을 축내서 꾸려나가려는 기업이 많잖아요. 정면으로 시장 경쟁을 하는 게 체질에 안 맞는 게 아닐까요? 관료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것도 경쟁을 배제하고 싶어서죠. 그럴 바엔 차라리 사회주의 국가가 되든가요.
평등하기 때문에 경쟁이 있는 건데도, 다른 사람을 짚고 올라서는 건 죄악시하죠. 이런 식의 혼네와 다테마에의 괴리도 사회주의적이죠.
통역사를 translator가 아니라 interpreter라고 하잖아요. '해석자'라는 의미죠. 화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뭔지를 이해해서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이 요구되죠. 단어 수가 많을수록 정보는 담기 쉬워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청자에게 제대로 전달 되는 건 아니에요. 소리로서는 들려도 의미로서 머리에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통역사는 의미로서 전하는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통역업계의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해서 출판업계로 보내 단물을 빨고 있죠.(웃음)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인이 쓴 이런 내용의 러브레터가 생각나네요.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내 보석 마리아씨. 당신의 눈동자가 저를 응시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알프스를 맨발로 넘는 것도 불사하겠습니다. 당신의 부드러운 팔에 안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깊은 바다도 헤엄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사랑스러운 마리아에게. 피에로"라고 쓴 다음에, "P.S. 다음 토요일, 만약 비가 안 오면 만나러 가겠습니다." 이게 바로 이탈리아 사람이죠.
이탈리아 여자는 그 달콤한 말에 걸려들지 않을 면역력이 있어요. "결혼해주지 않으면 나는 자살하겠다"라고 말해도, 언어중추에 도달할 때 쯤이면 "어이, 안녕하세요" 정도로 자동으로 번역이 되죠.
그건 이탈리어도 마찬가지예요. 축구팀에서조차도 "AC밀란"이라고 말하지 않고 "붉은색과 검은색 유니폼 롯소네로"라고 하는 식으로 무척 수사학적이죠.
남자들이 여자만 보면 어떻게든 유혹해야 하는 이탈리아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을 남 앞에서 드러내는 걸 천박하게 여기는 일본 같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길 건너편에서 눈에 띄는 미인이 걷고 있다고 해요. 일본 남자 같으면 길을 건너서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죠. 이탈리아 남자는 마음 속으로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어도 길을 가로질러 말을 걸어야만 하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자로 취급받지 못하거든요.
야구 선수가 데드볼을 맞았을 때 스프레이 한 번 뿌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루로 걸어가잖아요. 그 슾레이를 쩌도 뿌려본 적이 있는데, 사실은 그거 아무 효과도 없더군요.
그럼 일종의 주술 같은 건가요?
그런 셈이죠. 전혀 효과가 없으니까요. 주변에 굴러다니는 물파스 같은 걸 바르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게다가 옷 위로 뿌려서 무슨 효과가 있겠어요. 그런데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죠.
하지만 본인들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끼는 거죠?
아플 때 스프레이를 뿌리는 의식은 그런 의식을 치르면 아프지 않은 것으로 해두자는 암묵의 약속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거죠. 아마추어에게는 통증 완화에 아무런 효과가 없어요.
하지만 프로에게는 효과가 있군요?
프로에게는 효과가 있어요. 럭비 경기의 주전자도 마찬가지예요. 마법의 주전자라고들 하죠.
동시통역도 뇌를 근육처럼 사용하는 셈이에요. 예를 들어 역도 선수가 바벨을 들어 올리는 순간만 맥박이 140까지 올라간다고 해요. 동시통역은 대개 10분에서 20분 정도 하는데, 저는 그때 맥박이160이에요. 그러니까 뇌의 어느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죠.
기본적으로는 기자회견이나 학회처럼 모두에게 들려주고 알려주고 싶을 때만 프리랜서 통역을 고용하죠.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을 때는 기업에서도 전속 통역을 고용하고, 외무성이나 각 정부부처에서도 전속 통역을 고용해요. 그런 때 오역이 종종 나오게 되죠. 왜나하면 관리들은 책임을 지기 싫어하거든요. 기본적으로 통역은 '책임지고 싶지 않은 일'이죠.
기본적으로는 자구 그대로 옮기는 게 가장 무난하죠. 하지만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자구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자구 그대로 옮기면 반드시 오역을 하게 돼요. 따라서 무난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역이 되고 말죠. 최종적으로는 책임을 지지 않는, 그런 걸 우린 "총무과 계장의 통역"이라고 표현해요.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란 보통 남에게 말할 시가가 올 때까지는 말을 안 하고 싶은 법이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억지로 말 하게 해서 칭찬하며 높은 점수를 주는 식은 기본적으로는 포르노 영화와 다를 바 없죠. 젊은 여자애를 속여서 연기를 시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아무 쓸모도 없는 논문을 쓰는 것보다는 번역을 하는 편이 훨씬 더 세상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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