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문학과지성사, 2014(제1판 제3쇄)
한번은 아이들한테 말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들 엄마는 딸들과 대화도 나누고 잘 웃어줄 줄도 알았다. 그는 언어에 대한 애착이 거의 없었다.
이후 목소리가 망가지자 성가대가 약정한 계약서에 따라 거리로 쫓겨났다. 그 일은 아직도 수치스러웠다. 몸을 어디에 둘 줄 몰랐다. 다리와 뺨에 난 잔털이 쭈뼛 곤두섰고, 코끼리처럼 엉엉 울어댔다.
"아,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난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내는 것은 물, 물풀, 쑥,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 같은 헌물일세."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그는 여전히 깊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똑같은 사랑, 똑같은 단념, 똑같은 밤, 똑같은 추위였다.
heler. 목 놓아 부르기. 사라졌으므로, 돌아오라 온몸으로 울부짖기. 키냐르는 '번역'의 느낌을 'heler'라는 말로 옮기곤 한다. 분명 무언가를 느꼈는데, 그것이 온전히 되말해지지 않는다. 번역자는 현재진행형의, 그래서 더욱 괴로운 상실감을 산다. 조형화될 수 없는 이미지가 불쑥 환기되거나, 발설된 언어에 가만히 침묵이 체류하고 있거나, 도저히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이, 묘사나 서사가 아니라 문법이라는 수단만으로 어떤 감각을 일깨우곤 하는 키냐르의 언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이런 상실감은 더욱 크다. 가령 '거리 두기'와 '심연에 빠지기' 둘 다를 동시에 가능하게 만드는 키냐르의 단순과거는 우리 말로 잘 옮겨지지 않는다. 시제는 온다. 그러나 시간 속에 놓인 우리 몸이 지각하는 그 생리적 느낌은 오지 않는다. 단순과거passe simple는 문자 그대로 '단 한 번 잡힌 주름sim-ple' 같은 과거이다. 시간을 결코 나누거나 측정하지 않는 부정不定 과거. 시작도 끝도 경계도 없는 막막한 심연, 거대한 대양에 빠진 무아지경. 번역자는 이것을 온몸으로 느끼고도 되말하지 못하므로 경색된다. 강렬하게 느꼈기에 번역하고 싶은 충동과 그것을 결코 할 수 없는 무능 사이에서 추락한다.
사실상 원천적으로 만물에 '재귀retour'는 없다. 계절은 재귀하나, 매번 처음 온 것이다. 완료된 상실은 허탈감을 남기나, 현재진행형의 상실은 눈을 스르르 감게 만든다. 알랭 코르노의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1991)]에서 나이 든 마랭 마레는 가르침을 독촉하는 한 목소리에게 눈을 감은 채 말한다. "모든 음은 죽어가며 끝나야 한다Toutes notes doivent finir en mo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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