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맨즈 독, 조지수, 지혜정원, 2013(초판 1쇄)
습관은 물리적인 것들로 시작하지만 정신적인 것으로 변해 나간다.
전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상당한 이유는 된다. 진돗개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이 이 개의 이러한 기질을 자랑삼으니까. "이 개는 한 사람에게만 충성해요."
허영의 시대이다. 우리는 '허영의 시장'에 살고 있다. 부와 명예와 지위와 외모 등에 대한 역겨운 허영들. 허영은 심지어 사물에게 뿐만 아니라 사실에게도 향한다. 슬프게도 관계에도 허영이 존재한다. 진돗개의 충성과 절개는 무조건이다. 소유자는 그 '무조건'에 만족한다. 자기는 타고난 권리로서, 아무런 자격이나 노력 없이도 그러한 충성의 흠모 받는 대상이다. 이 세상에 천부적 권리란 없다. 모든 것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얻어지고 유지될 뿐이다. 그런데 한 생명에 대한 천부의 권리를 지닌다? 거기에 대한 자격이 있다? 나는 솔직히 이게 무슨 범주의 허영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당신도 때때로 무조건적 헌신을 한다고? 어리석은 소리엔 재갈이 약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잘 살펴볼 노릇이다. 어디엔가 조건을 감추고 있다. 마음의 깊고 어두운 구석에 자신의 요구가 작게 움츠리고 있다. 위선이란 감춰진 - 때때로는 자신도 그 존재를 모르는 - 요구에 다름 아니다. 자식에 대한 헌신은 무조건이라고? 웃기는 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비웃음을 살고 싶은가. 기만 없이 사는 것이 지혜를 향한 첫걸음이다. 그것은 생물적 조건, 모든 조건 중 가장 원초적 조건이다. 또 다른 자기인 자기 유전자의 번영이 그 조건이다. 요만큼은 인간도 본능에 지배받는다. 이 점에 있어 아슬아슬하게 인간이 진돗개가 된다.
앞으로 십오 년을 멀쩡한 정신으로 살 자신이 없는 노인네는 강아지를 들이면 안 된다. 반려견이라니? 반려의 대상이 치매에 걸리거나 사라지면 그 견은 어떻게 되는가? 인간은 본래 외롭다. 외로움을 견디는 훈련 없이 늙었다면 그 고통은 그의 몫이다. 늙어 바보는 진짜 바보인 것처럼 늙은 사랑 구걸꾼은 진짜 구걸꾼이다.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똑똑하다고 할 수 있나요?" 누군가가 물었을 때에 나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이것은 평생에 두 번 듣기 어려운 무식한 질문이다. 아니 무식할 뿐만 아니라 '무가치한 질문'이다. 나는 "양쪽 다 너보다는 똑똑해." 하고 싶었다.
서른 이후로도 매년 서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에게 대고, "아무개 씨는 서른셋이 아니라 사실은 서른이지요?"라고 물은 나의 친구는 그러니 미움받아 마땅하다. 명석한 질문을 했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사람의 허위의식과 허용에는 관용과 이해의 미소가 훨씬 낫다. 명석한 질문은 좋은 질문이긴 하지만, 사랑받는 질문은 아니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이 무어 그리 대수인가. "거울을 보면서 광속으로 날면 거울 속에 나의 얼굴이 비칠까?"라는 소년다운 질문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질문들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심원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나의 육체가 나의 마음보다 민첩하게 움직여나갔다. 나는 머무르지만, 세월은 소년을 이끌고 앞서 나갔다.
무슨 이유로 젊은이들이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길을 비켜주기도 하고, 눈을 내리깔기도 하겠는가? 노인네들이 더 지혜롭다거나, 더 오래 살았다거나, 더 신중하거나, 먼저 살았기 때문은 아니다. 누군가 이 중 어느 것을 주장한다면 요구되는 것은 양심의 검증이다. 기만은 효율적이지도 항구적이지도, 올바르지도 않은 생활양식이다. 그러니 좀 더 정직하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은 기억조차 못할 아득한 시절부터 '노인을 공경하라'고 세뇌되고 교육된다. 기억도 못할 시기에 심어진 관념은 일생에 걸쳐 마비적 효과를 가진다. 그리고 자신이 늙으면, 존경받을 이유가 위에 제시된 어떤 것에도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자신이 기득권자가 되는 것이니 그 속임수를 그대로 쓰기로 자신과 타협해버린다. 그러니 노인공경은 계속적으로 속고 속이는 협잡이다. 협잡질이 우리 효의 근원이다.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 노인공경도 공짜는 아니다. 노년이 젊은 세대들로부터 오는 존경으로 싸이기를 바란다면 존경받을 근거를 지녀야 할 것이고, 그것은 '나이가 벼슬'이라는 근거로는 아니다. 근거는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전 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감사이다. 그러니 먼저 그 존재가 즐거워야 할 노릇이다. 자기의 존재가 행복하고, 정의롭고, 힘찬 것이라면 인생은 살만한 것이 된다.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가령 그의 논문을 읽은 내가 "재밌네요."라고 했다면 그때부터 그는 연구 들어간다. 그 말이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가? 이변에 숨은 뜻(그것도 나쁜 뜻)이 무얼까? 그는 속으로 뇌까린다. '그저 재미있는 정도라는 거야. 아니면 독창성도 조금 있다는 거야. 체면을 생각해서 그냥 해 준 말이야, 아니면 괜찮은 논문이라는 거야. 좀 더 재미없게 쓰라는 거야, 뭐야.' 이런 사람 정말 피곤하다. 탐험도 안 해보고 지도 그린다.
갈등은 우습게 시작됐다. 나는 그 사실이 항상 궁금했다. 해명을 듣고 싶다. "왜 한국어라고 안 하고 국어라고 하지요? 또 한국사라고 안 하고 국사라고 하지요? 원래는 한국통사 등으로 했었잖아요. 언제부터 국가가 한국밖에 없어진 거지요?" 이 질문에 그의 눈이 매서워졌다. "나라에 대한 그 정도 자부심이 있는 거지요."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순식간에 자부심이 없는 놈이 되고 말았다. 우물 속의 개구리로 사는 것이 자부심인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세계에 국가라고는 한국밖에 없다는 듯이 살아야 자부심이 있는 거다.
내 성격이 별나게 까칠한 걸까? 하긴 매튜가 말한 적이 있다. "자넨 좋은 친구고 좋은 교수야. 재미있고 성실하지. 그렇지만 외교적 배려가 전혀 없지.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을 안 하지. 선택적인 까다로움이 있지."
한국의 길바닥에는 외국에 있는 모든 것이 있다 해도 양보와 자제는 절대 없다.
나는 정들면 돌멩이와도 헤어지기를 망설인다.
이십 년 전의 꿈이 불현듯 가슴을 쳤다. 그렇다. 포르쉐가 있다. 무의식 속에서 선택을 망설이게 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두렵고 부담스러웠다. 꿈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에 꿈이다.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집 한 채를 몰고 다닐 수 있나. 어떻게 그 귀족적인 기계를 노상에 주차시킬 수 있나. 어떻게 비를 맞힐 수 있나. 그렉에게 전화했다. 그렉은 의외였다. "몰고 나와! Drive it out"
노년이 생각만큼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젊었던 시절의 동요와 정념은 모두 사라지고, 포기와 고요가 삶을 지배한다. 날렵하고 매끈한, 처녀의 엉덩이 같은 포르쉐보다는 펑퍼짐한 아줌마 몸매의 세단을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노년은 세월에서보다는 마음에서 먼저 온다. 편안함과 사치스러움에의 요구가 노년보다 선행한다. 그러고는 이것을 "늙어가니까."라며 합리화한다.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기적이고 안일한, 늙기 시작하는 역겨운 사람, 교수라는 그럴듯한 직함을 가진 한심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종로 3가의 지하철역으로 갔다. 노숙자의 경험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음먹기였다. 서너 시간의 잠이 꿀맛 같았다. 라면 박스도 훌륭한 쿠션이었고 신문지도 따뜻한 이불이었다.
인간은 자기가 어찌해 볼 수 없는 과오에는 뻔뻔해진다.
경험만으로 논문이 가능하다면 그 분야의 논문을 몇 편 쯤은 쓸 수 있겠다. 그러나 논문은 경험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학문도 있어야 한다. 학문은 내게 없다. 이때에는 공부가 아쉽다. 젊었을 때 술 덜 마시고 공부 좀 했어야 했다. 경험은 종합할 지성이 없으면 지리멸렬하다. 그 지리멸렬만으로도 한몫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다시 말하면 '지성적'이라는 것은 지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항상 교양 있는 사람이 되려는 사실에 있다. 지성은 정보의 양이나 학위의 문제가 아니다. 지성에 끝은 없다. 지성적 고투 끝에 결국 궁극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가이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인간으로는 싫습니다. 갈매기나 상록수로 태어나는 편이 낫지요. 자연이 시키는 대로만 살면 되잖아요. 의식은 별로 좋은 거 아니에요. 그것이 실수하게 만들어요. 사람을 힘들게 해요. 의무 속에서 모든 평온을 앗아가지요."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려 했다. "죽음은 없어요. 더 이상 일하지 않는 내가 있을 뿐이지요."
어떤 시인이 노래하듯이.
"어떤 사랑이 오고 갔는지 나는 말할 수 없다. 나는 단지, 여름이 나의 안에서 잠시 노래 불렀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은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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