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 바티스트 보리유, 북이십일 아르테, 2014(1판1쇄)
"나는 췌장을 떠올리면서 커피를 마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생각만으로도 인슐린 분비량을 조절할 수 있을지 모르거든."
"특별 식이요법. 여러 조각을 피라미드처럼 쌓아서 한 번에 먹으면 위장이 눈치 못 채거든."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우리는 단순히 죽는 게 아니다. 무지갯빛 종마에 올라타면, 그 말이 우리를 등에 태우고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선율에 따라 구름 위를 뛰어다니는 것이다.
무덤 쪽으로 활짝 열린 환기창 같은 환자의 눈빛은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즉, 진단 결과를 이해했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인간의 눈빛이었다. 조만간 죽을 거라는 사실을.
블랑슈가 내린 결론에 따르면, 사랑은 씁쓸한 맛이 나고 불이 꺼져서 식은 양초 냄새가 난다. 블랑슈의 왼쪽 눈에는 자만심이, 오른쪽 눈에는 경멸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5층에는 신경과와 노인과가 들어서 있다. 생각이 들어왔다 나가는 곳이다. 이곳 5층은 병원 인근의 온갖 기억과 추억이 오늘, 아니면 내일 머물다 가는 곳이다.
불새 여인은 너그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의료진이 진통제를 처방하는 이유는 환자를 위한 것도 있겠지만 본인들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서라는 걸. 죽음은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죽음을 매일같이 접하지만 매번 두려움을 느낀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왜 맨날 화난 상태로 돌아다니는지 알아?"
"몰라요."
"앞다리가 너무 짧아서 자위할 수 없기 때문이야."
처음부터 한 가지 오해로 인해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왜곡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의사가 그들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정말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실과 다르다. 의사들은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환자들은 의사들을 낫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마 푸생이 마지막으로 해를 본 건 구글에서 '비타민D'에 대해 검색하던 중이었을 거예요. 한여름에 뜨는 태양 사진이 있었거든요.
"로맨틱하긴 또 얼마나 로맨틱한데요. 침대에 담배 한 개비를 고이 모셔놓고 '안녕! 내가 몸으로 너와 사랑을 나눠도 되겠니?'라고 묻는 친구니까요."
"인생은 하나의 선물 같은 거란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자꾸 잊고 살아. 이마에 온기가 느껴지니?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도 느껴지니?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거야. 그걸 꼭 기억해두렴."
그런데 우린 그 자리에 다 함께 있었다. 내 여자 형제들, 그리고 나. 모두 다 부엌에 있었다. 게다가 멀쩡히 살아 있고 다시 파이를 만들 시간도 충분히 있었다. 깨끗이 치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시간 낭비도, 헛수고도 아니었다. 우리가 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수천 개의 7호실이 있고 수천 명의 7호실 환자들이 있다. 그들은 파이 하나를 바닥에 엎는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새 파이를 만들고 싶어 한다.
어젯밤 넘어지는 바람에 가구에 머리를 찧은 환자다. 가구가 '유혹하는' 젊은 사람들의 신체 부위는 주로 발가락이다. 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의 경우 책장 모서리가 선택하는 신체 부위는 주로 이마 같은 곳이다.
병원에서 돈은 금기시되는 주제에 해당한다. 공식적으로 인간의 건강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공식적으로 본다면? 어딜 가도 다 돈이다. 복도에 돌아다니는 환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천연 금괴에 해당한다고 해야 하나? 모두가 돈을 좇는다. 언제나. 원장도, 관리부서도, 각 병동 책임자들도, 치열한 보물 사냥전이다. 병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침묵은 금이고 금은 주인공이니까.......
말년이 되자, 욥씨의 피부는 자몽 껍질처럼 노랗게 변색되었다. 복수가 얼마나 차올랐던지 네쌍둥이를 임신한 임신부가 보면 질투가 날 정도로 배가 부풀어 올랐다. 홀아비 신세가 못마땅했는지 말년의 동반자로 알코올성 간경화와 간암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말년의 동반자가 뼈와 폐, 뇌에다 새끼를 치고 말았다. "제가 좀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어서요. 병에 걸릴 거면 제대로 걸려보려 했습니다." 욥 씨는 이를 두고 '말년의 그랜드슬램'이라고 불렀다.
교훈 하나. 다리를 저는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일단 환자가 신고 있는 신발을 신어볼 것. 우리 직업은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니까.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좋아한다. '행복한 가족은 서로 닮은 듯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래서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감정을 차단하는데, 그 대가는 무시 못 할 만큼 크다. 마음과 정신의 입을 틀어막는 건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는 운동과도 같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햇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8분이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의견을 원하지도, 조언이나 훈계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가끔은 말도 응급실을 찾아야 할 때가 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삶은 환상적인 각도에서 바라볼 때 환상적으로 보인다 그 외의 경우에는 그저 개 같은 일만 가득 들어찬 어항에 불과하다.'
'없는' 날,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우주에서 잊힌 어느 찬장 위에 방치된 절망적인 어항 속의 절망처럼 보이는 날이면 마쓰다 씨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 세상에는 무한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우주, 그리고 인간의 실수다. 우주가 무한한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10대 소녀 환자의 팔을 붙잡고 주사를 놓는 동안, 자칫 흠집 하나라도 생길까 봐 두려워하며 순금덩어리를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만난 10대 소녀는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귀금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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