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럭셔리:

 

 

 

역시 여름엔 쪼리에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게 맛이지.

흔들리는 전철에서 밟히면 발가락 날아가버릴 하이힐을 피하며

스릴을 즐기기도 하고, 그렇게 30년 넘게 걸었는데

발가락은 아직도 10개 구나 꿈지락거리며 걷는 기분도 맛나고.

 

광고회사 제작팀은 어차피 굴속에 처박혀 햇빛 볼일 없이

아이디어 미싱만을 돌려대므로 반바지에 슬리퍼 복장을 용인하는 회사가 많다.

반면 어떤 회사들은 한 여름에도 반바지와 슬리퍼 착용을 금하는데

광고에이전시의 프로페셔널다운 태도와 품위를 갖추자는 의미다.

실제로 광고주와 자주 미팅을 해야 하는 기획부서나,

진짜 회사 같은 매체부서, 관리부서들은 캐주얼한 비즈니스 복장을 선호하는데

그들과 반바지 슬리퍼 차림의 제작이 한 회사에 섞여 어슬렁거릴 때

반바지+슬리퍼를 바라보는 생각은

저마다의 성향에 따라 나뉠 것 같다.

 

아무리 광고회사라도 저건 좀 그렇지 않아?

80년대 캘리포니아 IT회사의 히피도 아니고...

라는 입장과

역시 저런 분방함이 광고회사다운 거지.

저런 걸 보고 뭐라고 하는 회사도 있다니

요즘 광고회사들 너무 재미없어졌어

라는 입장이다.

 

아직까지도 광고회사에 대한 환상을

게임 회산, 모험 회사, 80년대 캘리포니아 근방의 히피스런 IT회사들 정도로

갖고 있는 나로서는

슬리퍼에 반바지, 현란한 타투와 목걸이를

치렁치렁대며 광고주 미팅에 나가는 제작팀장들을 볼 때마다

존경의 눈빛을 반짝거릴 뿐이다.

 

평당 임대료가 하늘 높이를 자랑하는 강남 중심가 고층 비즈니스 빌딩 안에서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썩썩 끌고 다니는 추레함.

그게 우리의 '럭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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