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다, 미셸 퓌에슈, 이봄, 2013(초판1쇄)
설명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가 있는 곳까지 찾아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공 모양으로 꼬깃꼬깃 접힌 구겨진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래서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설명이란 이 공의 주름을 하나하나 펴고 또 구겨진 곳을 반반하게 펴는 것이다. 만약 이 일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분명히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단지 설명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설명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 "너는 이해 못해"라는 말은 대부분 "너한테 설명할 수가 없어"라는 말로 대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명한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말하기 위한 것일까?
설명하려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말해야 한다. 사실 설명할 때 우리는 동일한 것,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다르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못한다.
맥락, 특히 인간적 맥락은
설명의 일부이다.
설명되지 않지만 그대로 존중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째서 나는 다른 장소나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장소, 이 사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지와 같은 문제.
진짜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왜
설명하고 싶어 하는가이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 문제에 대한 이해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이해는 우리에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주는데, 그런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설명이다. 그래서 설명에 둘러싸여 있으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살아가다 보면,
설명 없이, 설명을 요구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전진해야 하는 때를 알아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때란 바로
강렬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선택된 어떤 순간에는, 혹은 갑자기 우리를 덮치는 순간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살아내는 능력을 간직해야 한다. 언제나 설명으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하고 싶어 하면서 삶의 곁을 그냥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학자보다는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지 아는 현자가 한 수 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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