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대학교, 오찬호, 문학동네, 2015(1 3)

 

 

 

 

 

 지금의 대학이 '생각하고 질문하고 권위에 저항하고 자치권을 행사하는 공간'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자기 계발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는 '젊을 때 목숨을 걸라'는 섬뜩한 주제로, 유명 은행 부행장은 '어떤 사람이 은행에 입사하는가'를 주제로 강의한다. "토익에 너무 목숨 걸지 마세요. 900점 정도 넘기면 남는 시간에 책 읽으면서 소양을 좀 쌓으세요"라는 말에 학생들은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 이에 뒤질세라, 한 방송사의 뉴스 앵커는 '방송국에서 생존하는 비법'을 전수하기 바쁘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는 칠판에 참을 '인忍' 한 글자를 적어놓고 두 시간 동안 리더십에 관해 강의한다.

 

 

 

 최근 글쓰기 강의의 핵심은 '자기소개서' 작성이다. 이것은 자신의 생애에 대한 격조 있는 에세이가 아니라 철저히 '취업용' 버전이다. , 인사담당자가 주목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대학 정규강의에서 교육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강의의 교재인 [뽑고 싶어 안달나게 하는 자기소개서 작성법]의 한 페이지를 펼쳐 여백에 '시민단체 경력은 기재하지 말 것'이라고 꼼꼼하게 받아 적는다.

 

 

 

 수년 전, 대학거부선언을 한 김예슬이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고 했던 게 빈말이 아니었음을 해준이는 몸소 느끼고 있다.

 

 

 

 '인문계 출신의 9할이 논다'는 뜻의 '인구론'의 시대, '미래백수학부'라는 뜻의 '미백부'로 불리지만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는 인문학부는 이미 오래 전에 자존심을 포기했다.

 

 

 

 [최후의 교수들: 영리형 대학 시대에 인문학 하기]의 저자 프랭크 도너휴는 이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표현한다. "인문학 교수들은 스스로를 구제할 힘을 이미 잃어버렸다."

 

 

 

 인문학의 위기는 '돈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장 가치'로만 판단하려는 풍토에 인문학 자체가 희생당하는 데 있다. '잘 활용하면 상품성이 있다'면서 인문학이 '시장'에 적용된 사례들을 제시하는 이 풍경이야말로 인문학이 사라졌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해석은 이미 '사회적 공기'가 되었다.

 

 

 

 인문학은 "권력의 미시적 짜임을 아프게 들춰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보아도 이득이다. 어차피 인문학 많이 안 한다. 많이 한 적도 없었다.

 

 

 

 A+가 보장된 강의를 토니가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니는 '양민학살'외국어에 능통한 학생이 강의실 분위기를 장악하는 모습을 '압도당하는' 학생들은 이렇게 표현했다을 서슴지 않는다.

 

 

 

 단언컨대 영어강의는 교육적 효과가 전혀 없다. 실제 영어강의를 하고 있는 어떤 교수는 "현재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지만 내가 전달하는 효율도 70퍼센트 이하고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효율도 70퍼센트 이하로 떨어진다. 결국 0.7X0.7=0.49가 돼서 우리말 강의에 비해 반도 못 가르치는 셈"이라며 객관적으로 교육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영어강의의 한계를 잘 말해준다.

 

 

 

 '전공' '영어'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영어로 하는 전공강의다. 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복수전공을 감안하면 전공은 많아야 36학점인데, 영어강의로 끙끙대다 몇 과목 수업을 망치면 전공은 거의 없는 셈이다."

 

 

 

 영어 실력에 노력 이외의 변수들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는 임 수 차례 증명되었다. 어학 실력과 부모 소득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영어는 비용 투자 대비 점수 상승폭이 가장 높다. 가구의 월 평균소득이 100만원 증가할수록 그 집 자녀의 토익 점수는 21점씩 상승한다. 부모의 월 소득이 100만원 더 많으면 수능 영어접수 백분위가 2.9단계 올라가는데, 같은 조건일 때 국어는 2.2단계, 수학은 1.9단계 높아짐과 비교해보면 상승폭이 가장 크다. 영어점수는 '어릴 때부터' 누적된 투자의 결과다. 그러니 서울 강남권과 비강남권의 영어유치원 진학 비율이 20배 차이가 나는데 이는 고스란히 수능 성적 차이로 이어진다. 그리고 대학 졸업 이후까지 영향을 끼친다. 어학연수 경험은 대기업 취업 확률을 무려 49퍼센트나 높여주고 평균 7퍼센트 정도의 임금 상승을 보장한다.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어학연수 경험은 구질확동으로부터의 해방 가능성을 12.8퍼센트 높여준다. "10대 대기업의 합격자 평균 스펙 중 어학연수 횟수가 평균 1회가 되지 않는 곳"은 없다. 어학연수 경험 비율이 소득 상태와 비례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교육을 엄청 많이 받았다. 조기 영어교육이 언어구사력, 창의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이미 객관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영어유치원이 열 곳이 생길 때마다 소아정신과 한 곳이 생긴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토익 900점을 넘겼다고 다른 창의적인 일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번지수가 틀린 대학평가가 야기한 사회적 문제는 엄청나다. 이는 마블링이 많아야 좋은 소고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초식동물인 소는 원래 근내 지방(마블링)이 생기지 않는다. 소의 지방은 근육 '사이'에 낄 뿐이다. 그런데 소가 풀이 아니라 '옥수수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서 지방이 팽창하여 근육 사이를 파고든다. 과거 미국은 남아도는 옥수수 사료를 처리하기 위해 소에게 먹였고, 곡물업자들로부터 막대한 로비를 받은 미국 농무부는 '마블링' 등급제를 실시했다. 등급제 전에는 '기름 많은 소고기'였던 것이 등급제 후에는 '좋은 소고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풀 먹인 소'의 고기는 낮은 등급을 받았다. 이제 시장에서는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에 대한 수요가 절대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곡물 사료를 먹이고, 덩치를 키우기 위해 최대한 좁은 공간에 가두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소가 아프다. 그 소고기를 먹은 사람도 당연히 아프다. 그럼에도 그 소는 '등급이 높기에' 좋은 소다.

 게다가 '미국 소에 질 수 없다'는 한국인의 괴상한 의지는 미국에서 최고급인 '프라임' 판정을 받은 소고기는 감히 넘보지도 목할 1+급을 만들더니, 심지어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1++('일 투뿔'이라 읽어야 한다!)급까지 탄생시킨다. (참고로 미국 사람들도 잘 안 먹는다는 '프라임'은 한국에서는 1, 2등급 사이다.) 더 많은 옥수수 사료를 먹이고 더 많은 항생제 주사를 맞은 소지만, '청정한우' '명품한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높은 가격에 팔린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등급'으로 포장되면 속수무책이다. 마블링의 사례는 들어가지 말아야 할 영역에까지 자본이 들어갈 경우, 얼마나 많은 기이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논리를 물어서는 일등부터 꼴등까지 정확하게 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 사물과 현상에 관해 묻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과 논리를 갖도록 요구하는 대신 객관적 사실에 관해 암기하도록 요구할 뿐이다. 생각과 논리의 학문을 암기과목으로 바꾼 것이다. (...) 생각과 논리를 요구해서는 일등부터 꼴찌까지 정확히 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시험이 상대적으로 쉬워지니, 상대평가를 해도 등급을 나누기가 어렵다. 교수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자연스레 '어떻게 이끌어갈까'에서 '어떻게 탈락시킬까'로 교육 방향 자체가 바뀐다. 교수는 강의시간에 언급하긴 했지만 학생들이 쉽게 기억하지 못할 내용으로 문제를 출제한다. 학생들은 뒤통수를 몇 번 맞은 뒤 불필요한 것을 많이 암기할수록 높은 학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등생은 수업시간에 교수의 '토씨' 하나 놓치지 않는 다.

 

 

 

 상식이지만, 한국사회는 "비판적인 것을 공격적인 것으로, 창의적인 것을 엉뚱한 것으로 인식" 하는 경향이 무척 강하다. 그런데 대학이 그 비판과 창의를 전혀 묻지 않으니 기존의 고정관념은 확대 재생산된다. 그 미래를 생각해보자. '죽은 시민의 사회' 말이다.

 

 

 

 이런 언론 풍토는 '대학독립언론'을 만들었다. 잠망경(중앙대), 성신퍼블리카(성신여대), 외대알리(한국외대), 고급찌라시(성균관대), 국민저널(국민대), 연세통(연세대) 등은 대학언론이 지금과는 다른 역할을 한 과거에는 없었던 대안매체다.

 

 

 

 "잘 성장했다는 것은 오늘날 큰 결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을 아주 많은 것으로부터 차단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모든 대학생이 효율성 전문가가 된 요즘 현실에 잘 들어맞는다. 대학은 전혀 '컬러풀'하지 않다. 완벽하게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되어버렸다.

 '맥도널드화'는 효율성이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설명하는 사회학자 조지 리처의 개념이다.

 

 

 

 부실한 교육은 사회를 '사바나 초원'으로 만들어버린다. 민주주의가 훼손당한 사건에는 무관심하지만, '너 요즘 살찐 것 같아'라는 말 한 바디에는 깜짝 놀라 즉시 운동과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이 긴장감의 차이는 한 사회의 교육이 무엇을 지향하느냐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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