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또 올게, 어머니 홍영녀 딸 황안나, 위즈덤하우스, 2011(초판 1)


 


 


 


 


 


 그제야 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늦었다고 했다. 그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 죽는 것이 싫다고 해서 날만 밝으면 애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여놓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다시 업고 들어갔다.


 


 


 


 열 손가락에 불 붙여 하늘 향해 빌어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장서 써볼까,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린다.


 그러나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


 


 


 


 팔십 평생을 살아왔건만 돌아보면 흔적도 자취도 없다.


 언젠가는 껍질 같은 이 몸도


 자취 없이 흙으로 돌아가리라.


 


 


 


 홍합은 소스을 만드러


 분는다. 마늘 곳추울


 송송 스러 복다 설탕 기름


 엿 가진 양염 6수물을  함개 부고


 조림 소스를 홍하배 분는다.


 


 


 


겨울 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편지,


무슨 사연 그리 많아 밤새도록 내리는가.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안부,


혼자 누운 들창 밑에 건강하냐 잘 자느냐 묻는 소리.


그대 안부.


 


 


 


마루에 걸린 시계 소리.


생명줄 닳아지는 소리.


기다림 줄어드는 소리.


 


 


 


 누가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주어도 그 사람한테 마음이 확 쏠리고, 누가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사는 동안 내 마음을 식구들이 좀 북돋아주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대화에 목마르고 물 한 모금이 아쉽다. 빈 방에 쓸쓸히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못 이룬다.


 이러다가 화장실에도 내 발로 못 가게 되면 나는 어찌하나.


 깊어가는 밤과 함께 근심도 깊어간다.


 


 


 


 잠은 오지 않고 몸은 너무 아프다.


 아무도 없으니 너무 쓸쓸해


 천정에 매달린 파리도 반갑다.


 


 


 


 누구를 배려해줄 필요도 없고 모든 게 내 맘대로인 생활, 자유를 만끽하려면 외로움도 견뎌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에 정말 감탄했다.


 


 


 


 떠날 시간이 되었지만 너무 달게 주무셔서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어머니가 일어나시길 곁에서 기다렸다. 주무시는 어머니의 거친 손에 파리가 세 마리나 앉았다. 파리채를 휘둘러 쫓아버렸지만 금방 다시 달려들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무 일 없는 듯 잘 주무셨다.


 


 


 


 그러나 자식이란 겉을 낳지 속을 낳지 못한다.


 


 


 


 지 똥구멍 구리다고 잘라버리랴


 


 


 


 아흔 여섯의 어머니가 "엄마, 나 어떡해! 너무 아파!" 하시며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찾으시던 밤, 일흔 두 살의 딸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란 이름은 아흔여섯의 할머니도 애타게 찾는 영원한 그리움이다.


 


 


 


 평생을 '또 온다.'는 말에 매달려 자식을 기다리다 가신 어머니, 어머니가 그러셨다.


 "난 네가 오기 전날부터 시계를 보며, 모레 이 시간이면 네가 갈 시간이구나, 하고 생각한단다."


 자식이 오기도 전에 갈 시간을 섭섭해 하던 어머니.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