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지의 세계, 황인찬, 민음사, 2015(1판5쇄)
은유
저녁과 겨울이 서로를 만진다 초등학교 구령대 아래에서 누가 볼까 두려워하며
겨울이 저녁을 움켜쥐고, 저녁이 약간 떨고, 그 장면은 기억에 있다
어두운 운동장이 보인다 기울어진 시소와 빈 그네도 보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인다
누가 우릴 본 것 같아, 저녁이 말했고
겨울이 저녁을 깨물었다 그러자 저녁이 검게 물들고
그 장면은 기억과 다르다
장면이 모이면 저녁이 되고, 기억이 모이면 겨울이 되는,
그런 세계에서
너무 어린 나는 늙어간다
늙어 버릴 때까지 늙는다
이 학교는 나의 모교이며, 나는 여기서 따돌려지고 내쫓겼다 말하고 보니 정말로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저녁의 기억
겨울이 저녁을 핥았는데 그것은 기억 속에서의 일이었다
저 멀리서 손전등의 불빛이 다가올 때는
구원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누구의 기억인가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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