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나무의 저녁, 장철문, 창작과비평사, 2003(초판 발행)

 

 

 

 

 

하품은 굴뚝청소와 같다는데,

말하자면, 옥상에 가는 일은 하품과 같은 것이다

비를 두어 번쯤 맞은 꽁초는

내가 모르는, 내가 아는 사람의

하품의 흔적이다

 

 - <개가죽나무>

 

 

 

 

 

어쩌면 나는 아버지가 물어나르고

어머니가 지은

한채의 집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미끄러져 가듯이

당신도 당신의 한 채의 집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 <이사>

 

 

 

 

 

 

아내의 몸에 대한 신비가 사라지면서

그 몸의 내력이 오히려 애틋하다

 

그녀의 뒤척임과 치마 스적임과

그릇 부시는 소리가

먼 생을 스치는 것 같다

 

얼굴과 가슴과 허벅지께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오래 전에

내 가슴께를 스적인 것이 만져진다

 

그녀의 도두룩하게 파인

속살 주름에는

사람의 딸로 살아온 내력이 슬프다

 

우리가 같이 살자고 한 것이

언젠가

 

- <신혼> 전문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아내는

모로 누워 잠을 잔다

웅크려 잠든

아내의 잠은 혼곤하다

잠든 아내와 함께

아내의 피로도

함께 누워 쉬고 있다

나의 삶도 저렇게 누워서

아내의 눈앞에

쓰러져 잠들 때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함께하는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이 혼곤함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까닭일 것이다

아내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원망도

저기 저렇게 누워 있다

몇만년의 유전이

저기 저렇게 함께 누워 있다

아마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 <아내의 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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