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6(1판9쇄)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 - 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 -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시작은 사랑 전반의 모든 중요한 것들이 압축된 형태로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수많은 사랑 이야기에서 화자는 주인공들이 최초에 부딪히는 일련의 장애를 극복하고 나면 그들을 두루뭉술하게 만족스러운 미래로 넘기거나 아예 저세상으로 보내는 것 외에 할 게 없다. 보통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다.
이런 궁금증은 우리와 결혼한 바로 그 사람이 우리를 파멸시킬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걸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독신 생활에는 정상성에 대한 잘못된 자아상을 지어내는 습성이 있다.... 목격자가 없을 때, 그는 올바른 짝을 만난다면 자신에게는 함께하기에 특별한 문제가 전혀 없을 거라는 관대한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인생은 짧고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은데) 이케아 통로에 서서 어떤 잔을 구입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 점점 더 언짢아하고 급기야 다른 쇼핑객들의 주의까지 끄는 건 완전히 시간낭비라는 걸 두 다 똑같이 의식하면서도, 그들은 이케아 통로에 서서 어떤 잔을 구입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툰다. 20분 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보 같다고 힐난한 뒤 구입할 뜻을 접고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긴장을 일으킬 때마다 그 긴장감을 더욱 팽팽하게 하는 진짜 의문은 이것이다. "이걸 어떻게 평생 견디고 살지?"
우리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국제무역, 이민, 종양학 등)에서는 복잡성을 감안하고 이견을 수용하고 참을성 있게 해결해 나간다. 그러나 가정생활에서만큼은 치명적일 정도로 안이한 가정을 세우곤 하며, 이 때문에 협상이 오래 걸리는 데 대해 날카로운 반감이 생긴다. 욕실 관리를 두고 꼬박 이틀간 정상회담을 하는 건 너무 유별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집에서 정확히 몇 시에 출발해야 하는지를 정하기 위해 전문 중재인을 고용하는 건 분명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든 집안 문제가 동등한 권위를 갖진 않는다. 상대방이 시리얼을 먹을 때 얼마나 소리를 내는지나, 발행일이 지난 잡지를 얼마나 오래 보관하고 싶어 하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면 즉시 바보처럼 보일지 모른다. 식기 세척기에 그릇을 어떻게 포개 넣어야 하는지나, 버터를 사용한 뒤 몇 분 안에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 엄격한 규칙을 고수하는 사람은 무안을 당하기 십상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갈등이 대단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고민에 하찮고 별나다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
작은 쟁점들은 사실 단지 필요한 관심을 받지 못한 큰 쟁점들이다. 일상에서의 논쟁은 그들 성격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어져 나온 실밥이다.
두 번째 치유책은 보다 추상적이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를 생각하면 너무 오랫동안 분노를 안고 가기가 어렵다.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소통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덧붙이자면, 토라짐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한다....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때만이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이해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토라진 사람은 키 180센티미터에 성인의 직업을 견뎌내고 있을지라도, 진짜 메시지는 지극히 퇴행적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 젖을 먹는 아기이니, 지금 당장 나의 부모가 되어줘야 해. 당신은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를 정확히 헤아려주어야 해. 내가 아기였을 때,사랑에 대한 관념들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래주었듯이 말이야."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의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이 상황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평범해 보이는 상황이나 말이 한쪽으로부터 썩 정당하게 느껴지지 않는 반응을 이끌어낸다. 온갖 짜증과 불안, 성마름, 냉랭함, 공황, 비난 등이다. 당하는 사람은 당황한다. 따지고 보면 애정 어린 작별 인사를 요구하거나 싱크대에 설거짓거리 한두 개를 남겨두거나 상대방을 이용해 가벼운 농담을 하거나 겨우 몇 분 지체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특이하고도 다소 과장된 반응이 나올까?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과민 반응을 하는 사람은 과거의 감정을 현재의 누군가 - 전혀 당해 마땅하지 않은 사람 - 에게 '전이'시키는 것이다.
묘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자신이 어느 시대에 속해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에 늘 능통하지는 않다. 과거에 강도를 당한 사람이 침대 곁에 총을 두고 자다가 바스락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 깨는 것처럼, 마음은 다소 쉽게 비약을 한다.
곁에 있는 연인에게 더욱 안 좋은 소식은 한창 전이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는 것은 고사하고 쉽게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반응이 상황에 완전히 적절하다고 느낄 뿐이다.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는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 수 없기에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주변에 있는 가장 다정하고, 가장 동정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 즉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면서도 우리가 마구 소리를 치는 동안에도 우리 곁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성숙함이란 낭만적 사랑이 사랑을 주기보다는 찾기를, 사랑하기보다는 사랑 받기를 추구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춘 편협하고 다소 인색한 감정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인간 사회에는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인생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게 결국 그리 많지 않다는 측은한 믿음이 존속한다.
아이는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 아이의 상상 속에 그런 범주가 없다.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평등을 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괴로움의 복용량을 확실히 똑같게 측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각 당사자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더 저주받았으며 파트너는 이를 인정하고 속죄하지도 않는다는 진지하면서도 경쟁적인 확신에 빠질 유혹이 상존한다. 자신이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자기 위안식의 결론을 피하려면 초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만약 사랑을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라 정의한다면, 자주 시달리고 잔뜩 주눅이 든 남편에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18층으로 올라가 거의 모르는 사람과 10분 동안 구강성교를 즐기고 활력을 되찾게 해주는 것도 사랑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간주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는 결코 사랑이 아니라 속 좁고 위선적인 소유욕, 다시 말해 상대방의 행복에 자신의 행복이 포함되는 경우에만, 오직 그 경우에만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욕망에 불과하다.
우리의 낭만적인 삶은 슬프고 불완전하게 끝날 운명이다. 우리가 강력히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두 가지 근본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 곤란하게도 우리는 유토피아적으로 이 분열에 수긍하기를 거부하고, 대가 없이 어떻게든 일치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순진하게 소망한다. 자유사상가가 모험을 추구하며 사는 동시에 외로움과 환란을 피할 수 있고, 결혼한 낭만주의자들이 섹스와 애정, 열정과 일상을 통합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결혼: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일상의 삶은 현실적이고 비(非)자기성찰적인 시각에 보상을 준다. 그 밖의 것들을 생각하기에는 시간은 너무 없고 두려움은 너무 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독히 편드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냉소는 너무 쉽고, 그래서 얻는 것이 없다.
그는 복잡하고 섬세하게 합쳐져 단지 잠깐 동안 생명 활동을 하는 세포와 조직들의 집합체다... 그는 우주의 영원함 속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엔트로피를 거부하기로 결정한 우연히 결집된 원자 무리이다.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모두 당연히 악몽의 전형인 '엉뚱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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