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창비, 2016(초판4쇄)
그동안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살았다.
글을 썼다.
쓴 글 모아보았다.
꼬막 껍데기 반의반도 차지 않았다.
회한이 어찌 없었겠는가.
힘들 때는 혼자 울면서 말했다.
울기 싫다고. 그렇다고
궂은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다.
살았다.
마을
진달래야
너 인자 거기 서 있지 마.
그리 갈 사람 없어.
꼬인 말들을 풀어 바로 놓아야 집에 일찍 닿는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일 다 끝내고
무릎 위에서 이문 없이 쉬는
농부의 손처럼 착하였다.
- <익산역> 중
개도 안 짖는다
무엇인가를 잘못 눌러
써놓은 시들이 다 날아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며칠 후 세편이 돌아왔다.
한편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고
두편은 뭐가 불편한지
자꾸 밖을 내다본다.
돌아오지 않은 몇편 중에
어떤 시는 눈썹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시는 아랫입술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시는 귓불 밑 까만 점이 생각난다. 언젠가는
그것들이 모습을 갖추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개의치 않겠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이웃집 개도 안 짖었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한번
아침이다.
눈을 떴다.
귀뚜라미가 운다.
팔을 베고 모로 누워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그러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떠보았다.
한번 그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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