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문학동네, 2016(1판5쇄)
시인의 말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아.
시는 내가 안 쓸 때 비로소 시 같았다.
그랬다.
그랬는데,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
탐은 벽癖인데
그 벽이 이 벽壁이 아니더라도
문文은 문門이라서
한 번은 더 열어보고 싶었다.
세번째이고
세른세 편의 시.
삼은 삼삼하니까.
대서 데서
이 여름에 물이
이 얼음으로 얼어붙기까지
얼마나 이를 악물었을지
얼음을 깨물어보면 안다
이 여름에 얼음이
이 맹물로 짠맛을 낸다면
얼마나 땀을 삼켰을지
얼음에 혀를 대보면 안다
누가 얼어붙고
누가 이를 악물고
누가 깨물고
누가 맹물이고
누가 짠맛이고
누가 땀흘리고
누가 혀를 대고
누가 이 짓을 왜 할까마는
한다면 흰 베개가
한다면 갈색 밥상쯤
병원 베개라면 소독해서 청결하니 말이 될 거고
남원 밥상이라면 부러져서 정직하니 꼴이 될 거다
베개를 괴면 몸이 가로가 되고
밥상을 펴면 몸이 세로가 된다
이 여름에 이미들
그렇게 목도리들
가을에는 일찌감치 체크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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