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2,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한길사, 2016(1판1쇄)
“그럼, 집에 앉아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는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당신이 매일 직장에서 일을 하듯 저도 매일 글을 써야 합니다.”
분명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언뜻 의미심장해 보이는 미소. 나는 그것이 자기 자신을 의미 있는 존재로 나타내 보이기 위한 하나의 기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그런 작가가 자신의 글을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모호함으로 포장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내가 일상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눈앞의 현실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경험할 수 없어 항상 먼 곳을 동경해왔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내것이 아니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나는 그 삶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 무진 애를 써보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해온 투쟁이다. 하지만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동경은 눈앞의 일상에 구멍을 내기 일쑤였으니까.
내게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아이가 잘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정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도시에서 사는 이유는 전적으로 혼자 있고 싶기 때문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불특정 대다수의 낯선 얼굴들 속에선 마음의 문을 닫고 거리를 두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낯선 얼굴들의 파도 속에서 혼자 헤엄칠 수 있다는 것은 대도시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인간이 세상 속에서 방황했지만, 지금은 세상이 인간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의미가 옮아가면 무의미도 함께 옮겨지기 마련이다.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세상에서 한데 모여 사는 것 외에는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을 수 없는 데도 왜 우리는 이 일은 할 수 있되 저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삶은 결국 한 줌의 축축한 흙과
누렇게 바싹 마른 뼈다귀로 변할 뿐인데, 우리는 왜 끊임없이 삶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는가. 이런 관점 속에서 죽음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시를 잃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를 읽을 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건 어렵지 않다. 책을 펼쳐 읽다가, 시의 세상이 나를 위해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준다고 느낀다면, 그는 시를 읽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인간의 가슴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세상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요.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한 거예요. 세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꼭 세상을 피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적어도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죠.”
매번 그녀의 어두운 면이 짜증으로 변해 내게 쏟아질 때면 나는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곤 했다. 다시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람이 강렬하게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자 린다의 기분은 점점 더 가라앉았고, 그러면 그럴수록 린다는 나를 더욱 심하게 옭아매었다. 나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밀실공포증 같은 답답함이 덮여왔기에 나는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고 그녀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동시에 그녀는 내가 만들어둔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문득 뒤쪽의 한 벤치에 혼자 앉아 흐느끼는 여인이 눈에 띄었다. 남편이 야곳ㄱ 시간에서 10분이나 지났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녀의 남편이 문에 들어서자, 그녀는 주먹을 쥐고 남편의 배를 마구 때렸다. 그런데도 조심스럽게 아내를 다독이며 달래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지난가을 우리가 서로 말다툼을 하고 분노했던 까닭은 우리의 관계에서 사라져버린 것들 또는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린다는 이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남아 있는 것들까지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나를 더욱 구속했고, 내가 그것을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나를 더욱더 옭아맸다. 결구 ㄱ우리 사이의 거리감은 더욱 넓어졌다.
린다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린다는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몸을 홱 돌리고 불쾌감을 표한다. 도대체 왜? 그건 린다가 자신의 감정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란 것은
억누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지만 모두 꾹꾹 눌러 담고 내보이지 않았다. 윙베 형과 조카들이 떠나고 나니 린다는 다시 밝고 즐겁고 기대에 찬 여인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그녀와 거리감을 두는
방식으로 그녀를 응징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모른 척 내버려두었다.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일은 끝까지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일로 남겨두리라 마음 먹었다. 우리는 밝은 기분으로 성탄절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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