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침을 사랑한다는 건 삶을 좀 편하게 해보겠다는 것인데
아침은 꼭 챙겨먹기로 방침을 정한 사람은
속이 더부룩한 아침에 밥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지 않을 것이며
8시 이후로는 물 외에는 안마시기로 방침을 정한 사람은
8시 15분에 도착한 최고급 피자 앞에서 갈등하지 않을 것이다.
문장 뒤에 마침표를 찍지 않기로 한 사람은
매번 문단과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까 말까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키가 165이하인 사람은 만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거나
몸무게가 55 이상인 사람은 만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거나
이성에 대한 방침을 정해놓은 사람은
소개팅 장소에 나타날 사람에 대한 불안을 얼마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방침을 세워두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그 방침에 대해 '회의'하지 않으므로-
이런 방침이 많아지고, 엄격해지면
도무지 말이 안통하는 답답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자신의 방침을 남, 특히 가족에게까지 강요한다면 그건 정말 재앙이기고.
한편으로는 방침을 너무 이상적으로 세워놓아서, 스스로 그 방침을 지키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보통 '방침의 미덕'이란,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지 미리 답을 정해놓아서 고민할 시간과 에너지를 스킵-하는 것인데
세워놓은 방침 자체가 지키기 어려우면, 매번 이 방침을 지킬지 말지 고민하게 되니 방침을 세운 의미가 없다.
결국 방침은 너무 잘 지켜도 문제가 되고, 안 지켜도 문제가 되는데.
다만 좋은 방침을 잘 만들어놓으면 삶이 놀랍도록 효율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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