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이집트에 갔을 때,
매순간 모든 물건과 음식에 바가지를 뒤집어 써도
가격이 한국과 같은 정도라 즐거웠던 적이 있다.
여행이기에 돈이 많이 들것도 예상했던 바고,
바가지를 써도 기껏해야 한국 돈으론는 천 원, 이천 원 정도였는데
이상하게도 화가 났었다.
그 이유는, 속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속지 않는 데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속는 자신을 용납하는 법을 잊어버렸고,
속지 않는 자신에게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이라는 먹고 먹히는 곳에서도 똘똘하게 살아왔는데
여기 이집트의 무식한 것들의 어설픈 바가지에 속아넘어간다는 사실이
분통 터지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한국사람들은 자신이 속임을 당한다는 것
자신이 남보다 비싸게 사거나 바가지를 쓰거나 한다는 것에 대해서
절대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속이려 든다면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속임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몇 번의 바가지를 당한다고 그 사람이 모자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서너번의 바가지 쯤이야 알면서도 넘어가줄 여유, 혹은 방관도 있을 수 있다.
크고 무서운 심각한 사기야 당연히 조심하고 경각심을 가져야겠지만,
신발 한 켤레, 작은 가전제품 하나, 천원 이천원, 혹은 만원 이만원에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예민해질 필요는 없을 텐데.
최대한 낮은 가격에 같은 물건을 구매하고, 같은 서비스를 누림으로서
일년에 다섯 켤레 살 신발을 여섯 컬레 살 수 있게 되었다면
그만큼 우린 더 행복해지는 걸까...?
잘 쪼아대면 여섯 켤레 살 수 있는 가격으로, 신경 덜 쓰고 다섯 켤레를 구입한 사람은
무조건 더 불행해지는 걸까?
어떤 사람들은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줄 때가 있는데
그들의 그런 행동은, 정확히 어떤 심리적 작용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땐 속아주는 그들이 더 행복해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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