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참 많은 걸 갖고 있다.
내가 갖고자 했던 거의 모든 걸 갖고 있다.
내 방과 직업, 소득, 여자친구, CD들, 라디오, 원하는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는 기쁨.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하고 무기력 할까.
누구 말마따나 예전 어렵던 때의 긴장감을 잃어버려서 그런 것도 같고
평생을 쏟아 부을 근사한 꿈 하나 없이 살아가기 때문인 듯도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정'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일에 대해서 내 방에 대해서 여자친구에 대해서 지금의 삶에 대해서
'이것 아니면 안돼-' 하는 진정을 담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돈을 많이 준다면 당장이라도 회사를 옮길 것이고,
스타벅스 점장을 시켜준다면 지금의 내 일을 단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배우나 아이돌의 사랑 고백을 받는다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헤어질 확률이 매우 높아질 수 있고,
근사한 집을 구한다면 지금의 옥탑방을 당장 벗어날 테니까.
결국 '진정'이 없다면
집도, 일도, 여자친구도 가졌어도 가진 게 아니다.
그저 걸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진정'
내 것에 대한 소중함을 진심으로 느끼는 마음.
그것은 비교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오롯이 그것, 그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
타워팰리스와도 렉서스와도 여배우와도 삼성그룹의 CEO자리와도
비교되지 않고 비교될 수 없는 그런 것.
느닷없이 내 모든 삶에 대해 '진정' 만족할 수야 없겠지만,
작은 것들부터 하나씩 '진정'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건을 사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 처음의 그 기쁨이 절반으로 줄고,
한달 쯤 지나면 뭘 샀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스쳐가는 즐거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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