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 중반

사회의 이슈 중 하나는 예절 모르는 젊은 것들이었다.

그때 젊은 세대를 일컫는 X세대라는 용어가 처음 생겨났고

젊은이들의 문화가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고 힘을 키우던 시기였다.

 

어디서나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있으며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요즘 것들은 되 먹지 않았다는 비난이 심심찮게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신해철등은 허구한날 부모 말씀, 선생님 말씀, 듣기 싫은 잔소리들

속에서 살아가는 요즘 애들이 듣기 싫은 소리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최소한의 욕구가 드러난 것이며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라고 젊은이들을 옹호했으며,

수험생들이 더 피곤할 수 있고, 몸이 아픈 데도 불구하고 눈치가 보여 자리를 비켜주는

억울한 경우도 있었다는 사연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10대 들에게 공유 되었다.

 

어른들이 많은 곳에서 서슴없이 귀를 틀어 막는 것,

어른들 및 기성 세대로부터 스스로를 차단 하는 것,

그것은 오늘날의 촛불시위만큼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어른들에게 꽤 불편한 저항행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CD한 장 다 돌아갔을 시간인가 싶은 지금,

어느새 그 후로 20년 이상이 훌쩍 지나버렸고 

어린 것들과 늙은 것들 사이에서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것들의 예절 없음보다 심각한 것이 늙은 것들의 예절 없음이라는 것이다.

 

자기보다 어려 보이면 무조건 반말을 하는 늙은이,

패스트푸드점에서 남이 앉아 쉬고 있는 테이블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떡 하니 앉아버리는 늙은이,

술에 취해 전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늙은이,

젊은이 못지 않게 다리를 쩍 벌리는 늙은이,

심지어 이미 꽉 찬 7인석 지하철 좌석 사이로 비집고 앉아버리는 늙은이,

버스 정류장에 줄 서서 버젓이 담배 피우는 늙은이,

심지어 한겨울 1호선에서 만취한 늙은이가 승객의 코트에 오줌을 싸는 것도 보았다.

 

우리 사회에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어린 것들이 '예의를 배우지 못해'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자신은 예의를 덜 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예의'를 배워버리는 습성이다. 


20년이나 지나 다시 생각하는 바이지만,

당시에 늙은이들이 귀에 이어폰을 꼽고 다녔다고 한들, 누구도 예의 없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 당시까지(그리고 어느 정도는 지금도) 예의는 어린 것들이나 지키는 거라는

수준 낮은 차별이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나는 공자도 맹자도 유교의 가르침도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이 나이가 들수록 예의 없어지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겐 함부로 하고,

뻔뻔해지고,

자기 중심적이 되고,

그러면서 남 탓 하기는 즐기는 그런 늙은이들이 되라고 가르쳤을리가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어떻다는 말은 

그야말로 옛사람들의 가르침이 아니었던가?


이상하게도, 예의 없는 것들일 수록 예의를 따질 때가 많고

어설프게 배운 것들일수록 배움을 따질 때가 많다. 

뭐든 '야매'가 무서운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의가 재정립되어야 하는데

어디서도 그런 역할을 하는 기관이 없다. 

예의와 상식의 재정립이 없으니 정말이지 과도하게 상식을 넘어버린 인간들이 여기저기 생겨나,

자신이 옳은 거 아니냐며 자신의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암 유발한다거나

제발 자신도 똑같이 당해봐야 정신차린다는 댓글 역풍에 당황해하기도 한다. 

 

학교에선 오늘날에 맞는 예절 과목이 사라지고 있고

오직 입시 위주의 학업, 그리고 취업 위주의 학업으로 평가 받는 만큼

지금의 젊은 것들이 늙은 것들이 된다고 해도, 그다지 예의바르거나 사회에 모범이 되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 해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 늙은 것이 되겠지만.

 

인성에 관한 우리의 교육은 19세 이전에 끝나는 데 사실 

19세 이전에 끝나는 교육에도 딱히 인성이나 예의, 상식에 대한 적절한 가르침은 없다. 

우리는 그저 내 주변 사람들을 보고 적당히 이런 게 예의일 것이라고 꿰맞추거나

내 꼴리는 대로 하고 이를 정당화한다.


어쩌면 우리에겐 장기적이며 평생적인 예절 교육, 인성 교육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특히나 나이 들어가며 '뭔가를 안다'고 착각하게 되기 쉬우므로

특히나 나이 들어가며 '자신의 기준'이 모두의 기준이라고 착각하기 쉬우므로

늙어가는 이들에게 맞는 적합한 예의, 예절, 상식의 교육이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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