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문학동네, 2017(1판 9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볼우물이 깊게 패게 담배를 빨았다. 담배 연기가 질 나쁜 소문처럼 순식간에 폐 속을 장악해나가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 소문의 최초 유포자인 양 약간의 죄책감과 즐거움을 갖고서였다. 

 

 

 이날 두 사람은 평소보다 달게 잤는데, 저녁상에 오른 나물 덕이었다. 도화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 숲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낮은 조도로 점멸하는 식물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동안 영혼도 그쪽으로 팔을 뻗어 불을 쬐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지방까지 거리를 계산할 때 시작점도 광화문이었다. 



 햇빛이 충분치 않은 공간에선 이따금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기는 펑! 펑! 시간에 초크질을 하며 현재를 오려갔다. 플래시 소리는 낙하산 펴지는 기척과 비슷해 우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살았다는 안도를 줬다. 



 카페 천장 모서리에 달린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댄스가요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양동이에 소음을 담아 우리 머리 위에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옆자리의 학생들이 몇십 분 째 누군가를 맹렬히 헐뜯는지라

나는 그만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걔가? 그 교수랑? 어머, 어떻게 그래? 타인이 아닌 자신의 도덕성에 상처 입은 얼굴로 놀란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도 아는 즐거움이었다. 



 아주 단순한 요리라도 그 안에는 장보기와 저장하기, 씻기, 다듬기, 조리하기, 치우기, 버리기 등 모든 과정이 들어가야 했다. 



 적어도 중학생 때까지 나는 엄마를 그렇게 올려보는 일에 익숙했다.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사람 얼굴을 보려면 자연스레 하늘도 같이 봐야 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세상의 높낮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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