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문학과지성사, 2018(초판 26쇄)




 잘 식은 봄밤 공기는 가슴을 떨리게 하기 충분했다.



 철학과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 안색에도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환영식 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 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나는 좀더 적극적으로 사이다를 들이켰다. 컴컴한 입에서 작은 불꽃놀이가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살짝 매캐한 눈물이 났다. 어둠 한가운데서 알전구를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감동적인 음악을 들으면요, 참 좋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어요.”



 곧이어 음식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서 새어나온 구정물 냄새가 청량한 새벽 공기를 타고 기옥 씨네 집까지 들어왔다. 간밤, 잠을 설친 도시가 찌뿌둥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며 내는 구취였다.



 제사는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지내줘야 했다. 기옥 씨는 음식으로 자기 몸에 절하고 싶었다.



 각각의 과정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손’이 아니라 ‘손의 세부’를 만져주는 손길.



 소리에도 겹이 있다는 것. 좋은 스피커를 통과한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건축이 된다는 것. 그것도 그냥 건물이 아니라 대성당이 된다는 걸 서윤도 어렴풋이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태국에 와 있다. 우리는 틈나는 대로 딴 나라말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 나라말을 딴 나라말이라 불러보니 좋다. 고국에서는 한국어를 ‘하는’ 혹은 한국어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외국서는 ‘한국어를 가지고 다니는’

기분이다.”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1700년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을, 2000년대 캄보디아에서 온 한국 여자가 1900년대 글렌 굴드가 연주한 앨범으로 듣는구나’ ‘이상하고 놀랍구나’하고 생각했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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