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라, 로버트 링엄, 카시오페아, 2018(초판 1쇄)




 

 인생이란 게 다 그렇다는 듯 직장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사무실에서 펜이나 토너를 훔치는 것으로 상실한 자존감을 보상받으려 한다. 



 상호 ‘동의’는 현대사회의 도덕 체계를 이루는 근간이다. ‘동의’는 현대사회의 법과 민주주의, 사회적 상호작용, 성관계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일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오늘날 ‘노동’은 상호동의하에

진행된다고 볼 수 없고, 우리 사회의 도덕규범을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노동은 폐지되어야 마땅하고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제 소비는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때가 되면 밥을 먹듯 별생각 없이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한다. <애드버스터스Adbusters>지 편집자 칼레 라슨Kalle Lasn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International Buy Nothing Day’이라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 그날 하루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 날인지 깨닫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우리에게 행위(공부, 노동, 쇼핑, 은퇴, 죽음)의 자유를 누리도록 허용하지만 진짜로 가치 있는 결과물은 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정부의 목적은 개별 및 잡단 행동을 규제하는 데 있다.



 우리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갖추고 있지 않다. 정부는 민주주의가 그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버렸다. 그런 뜻에서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투표로 뭐라도 바뀌는 게 있다면 투표는 불법이

되었을 테다.”


 

조지 오웰은 <숨 쉬러 나가다Coming Up for Air>에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한다”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 안에는 악마가 있어 항상 어리석은 짓을 부추긴다. 가치 있는 일 말고는 무엇에는 시간을 투자한다.

왜일까? 어째서 우리는 이 ‘백치 같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에 대해 사르트르가 제시한 설명이 있다. 그는 우리가 ‘거짓 신념bad faith’에 빠져서 너무나 자주 좌절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로워지면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이 노력에 당신의 생존이 달렸다는 것. 이것이 족쇄에서 탈출을 꿈꾸는 자가 해결해야할 난제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로 직면할 살벌한 현실과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고자 자유의지에서 도피하는 데 유용한 변명을 생각해내는 경향이 있다. 우리 발목을 잡는 것들을 탓하며 변명하는 쪽이 훨씬 덜 두렵고 마음 편하다. 이를 테면 “묶인 몸이라 베이징에 갈 수가 없어. 아니,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면 된다. 



 소설사 스티븐 프레스필드Steven Pressfield는 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프레스필드에 따르면 그는 매일 ‘자항resistance’과 전투를 벌인다. 저항은 우리를 유혹하는 목소리다. 진짜 중요한 일(탈출 계획, 소설 집필, 자기 계발)에 

착수하는 대신 빨래하기, 넥타이 알파벳순으로 정리하기, ‘책상 청소’처럼 터무니없는 일들을 하라고 시킨다. 

저항은 자신에게 실제로 유익한 활동을 기피하거나 거기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책을 집필하거나 사업을 시작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건강한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저항에 직면한 경험이 있을

테다. 우리가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 외부에서는 노도오가 소비, 관료제라는 조쇄가 방해하고 우리 내면에서는 저항이 일어난다.

 스티븐 프레스필드는 그의 책 <최고의 나를 꺼내라The War of Art>에서 저항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는 저항이 일어날 때면 악마의 군대나 용 혹은 ‘외계인이 방문’한 것으로 상상하라고 주문했다. 스스로를

용을 죽이거나 귀신의 머리를 베는 전사로 그려보는 훈련은 저항을 물리치는 방법으로서도 유용하지만 내면에서 나오는 저항의 목소리가 사실 우리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부자 동네에 살거나 캐비아 요리를 먹는 것처럼 명성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해주는 지위재다.



 한 친구가 내게 ‘solvitur ambulando솔비투르 암불란도’라는 라틴어 문구를 소개해주었다. 말인즉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대개의 경우는 그렇다. 대개는 걸으면 해결된다. 



 관점이 바뀌면 애초에 무엇 하려고 직장에 다녔는지, 어째서 필요하지도 않은 한심한 물건들에 돈을 썼는지 오히려 의아하게 여겨진다.



 요컨대, 합의된 시간만큼만 일하고 그 이상 일하지 말자는 얘기다.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고 ‘이달의 우수 사원’ 같은 모호한 영예를 얻으려고 애쓰지는 마라.


 연구 과학자였던 야콥 룬트 피스커Jacob Lund Fisker는 수년간 초조기 은퇴extreme early retirement 개념을 주장해왔다… 야콥에 따르면 “은퇴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라고 묻는 사람은 흔하지만 “은퇴하려면 

얼마나 적은 돈이 필요한가?”라고 묻는 사람은 드물다. 다시 말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이 적을수록 미래에 필요한 돈이 적을 테고, 은퇴하기 위해 적립해야 할 금액도 줄어든다.은퇴하는 데 필요한 돈이 적을수록 더 일찍 은퇴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접근한 여느 논문과 달리 야콥은 비용이 적게 들고 우리 영혼을 고양하는 활동을 권장한다. 야콥의 글은 그 의도나 목적에서 경제학이 아니라 윤리학이다.



 “신들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 가까운 인간이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가 한 말이다.



 감각차단 탱크나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면서 머무는 별장에는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다. 감각을 소비할 일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감각을 느끼지 않기 위해 돈을 슬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빈 공간, 정적, 감각의 공백은 

희소한 신상품이다.



 우리는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그것들이 우리 뇌에 남긴 인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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