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솔직히 ‘뭘’ 이루기 위해 썼던 게 아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누군가의 칭찬, 감탄, 점수, 작은 상 같은 것들을 이루게 되었고
점차 이루기 위해 ‘뭘’ 쓰게 되었다.
그러다 더 이상 ‘뭘’ 이루기가 힘든 때가 오자 더 이상 ‘뭘’ 쓰는 게 시시해졌다.
‘뭘’ 쓰는 걸 점차 그만두게 되었고
대신 아침 7시에 물걸레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나도 ‘뭘’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얘기를 하고
‘뭘’ 이룰 것 같은 친구들 위주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뭘’ 이렇게 살고 그랬다.
세상은 ‘뭘’ 이런 걸 나에게 주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