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의 기쁨
여자친구는 치우는 걸 아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서
여가의 기쁨을 얻는다.
그래서 최대한 어지르고 최대한 미뤄두다
이제는 할 수 없이 치워야만 할 때 시무룩해진다.
반면 나는 먼저 청소를 해놓고 난 뒤 이젠 안 치워도 된다는 데서
여가의 기쁨을 얻는다.
청소를 최대한 미루기 위해선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합리적이지만,
여자친구는 ‘집이 지저분하긴 하지만 아직 청소를 안 해도 돼’를 더욱 감각적으로 느끼기 위해
쓰고 난 화장솜, 얼굴 팩 등을 화장대 아래, 소파 밑 바닥에 그냥 버린다.
벗은 양말이나 겉옷, 신발도 아무렇게나 던져둔다.
옷이나 생활 소품들이 모래산처럼 쌓이면 키우는 개가 올라가서 논다고 한다.
필요한 물건을 찾을 땐 그 산을 뒤진다고 한다.
여자친구는 치우지 않고 마음껏 어지를 수 있다는 데서 여가의 기쁨을 얻는다.
나는 빨리 다 치워버리고 나서 이제 더 이상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데서 여가의 기쁨을 얻는다.
여가를 즐긴다는 건 꽤 복잡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