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드라이브 없는 컴퓨터
기억이 좋고 나쁜 걸 떠나서
과거가 떠오르지 않는다를 떠나서
그냥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오늘 태어나 오늘부터 살아가는 듯
철벽처럼 과거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태풍에 뜯겨져 나간 다리처럼
과거가 강한 바람에 뜯겨져 날아간 것 같다.
“기억 소멸”에 가까워 기억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스스로 알 수 없을 때
사람은 자신의 삶이 미세해 보인다.
기억을 저장할 곳 없는 무정란
혹은 하드 드라이브 없는 컴퓨터로 태어난 기분이다.
작업을 수행하되 기록되지 않는다.
오늘이 기억되지 않을 걸 아는 상태로 오늘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