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는 뭔가니까

 

뭔가를 쓰면 자존감이 조금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내 속 어딘가 존재하는 외국의 유명한 크리에이터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준다.

그가 감탄의 신음을 내뱉고 난 그의 표정을 보며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그는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나는 겸손의 눈빛을 연기한다. 

그는 나에게 석유가 가득한 나라를 선물로 주고 

난 포르쉐의 창문을 열고 차를 알기 때문에 페라리가 아닌 포르쉐야의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캘리포이나의 어딘가를 달린다.

대체 왜 내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평가자는 국적도 알 수 없는 외국의 유명한 크리에이터인지부터 

질문할 게 한 두 개가 아니지만 그냥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기로 한다.

원유 같은 맛이 나는 맥주를 들고 설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간다.

어쩌면 설원이 나를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고 자면 꿈을 자꾸 꾸는 데 꿈을 꾼 날에는 조금 덜 외로운 기분이다.

그래서 술과 꿈이 섞이고 이부자리와 원유국의 크리에이터가 섞이고

절편 같은 이부자리를 씹으며 또 하루가 어제 같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양재천 잉어들에게 먹이를 뿌리듯 워드 파일을 열고

뭔가를 쓰면 자존감이 조금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지구 해수면도 이런 식으로 올라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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