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그렇게 잘려나가는 것이 운명이라면 왜 손톱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혹은 이 정도 속도로 자라야 하는지.
훨씬 천천히 느슨하게 자라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른 손톱을 모두 한 곳에 모을 수 있다면 얼마나 될까.
A4 종이 박스 하나도 다 차지 않겠지.
그렇게 치면 손톱이란 부위가 평생 지구에서 차지했다 사라지는 공간이 그 정도라는 데에
안쓰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몸을 통과하는 동안 소화된 뒤 다시 지구에 배출되는 똥 오줌의 평생 양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지.
똥과 오줌에는 자란다는 표현이 붙지 않는다.
썩거나 배출되는 존재니까.
반면 손톱은 자란다. 잘라내기 전까지는 나라는 존재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전자시계의 알람처럼 손끝에서 울린다. 다만 무음일 뿐.
다시 손톱은 왜 자라는 걸까. 다치면 아물면 될 텐데.
손톱은 아무는 능력을 부여 받지 못했다.
자꾸 번식해서 대체 요원이 될 뿐인 어느 부대의 보충병일까.
밤에 먹고 자면 안 되는 이유는 소화기관에도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데.
손톱은 잠든 순간에 더 성장을 촉진한다는 얘길 들은 것 같기도.
이토록 쉬지 않고 자라는 열정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할지. 그렇다고 손톱을 정성 들여 깎는다는 것이
딱히 위로가 될 것 같지도.
손톱은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간다. 누군 변기에 쏟아버릴 지도 모르지만.
인체의 일부였다는 이유로 무덤을 만들어주거나 묻는 사람도 있을까. 어쩌면 가능하지.
그래도 대부분은 쓰레기통으로 간다.
쓰레기통으로 간 뒤의 일정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무신경함에 대해 반성하듯
손톱이 대신 현장 실습을 간다.
나보다 먼저 길어지다 먼저 돌아간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어쩌면 그들이 나보다 먼저 잘려나간 손톱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점차 내 몸도 윤기를 잃고 균열이 생겨가겠지.
가끔은 다가올 미래에 경고를 보내 듯 자다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무음 설정해둔 알람시계처럼 소리 없이 울릴 뿐이다.
손톱을 자르면서 가끔씩은 내 평생 잘라버린 손톱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시간을 돌려 처음부터 다시 자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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