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김영사, 2016(1쇄 발행)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간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게 된 집은 마치 선반에 놓인 채 잊힌 복숭아나 같았다. 순식간에 상하고 녹아버린다.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설계도가 현장에서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은, 조그만 실수도 놓치지 않는 고바야시 씨 주의력 덕인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사례나 데이터를 알고 싶을 때면, 슬쩍만 물어봐도 즉각 정확한 대답이

돌아온다. 머릿속에 먼지 한 톨 떨어져 있지 않을 것 같다.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여닫이가 나쁜 문짝 같던 내 행동거지가 조금씩 덜컹거림이 줄어들면서 레일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이 느껴졌다.

 

 

 “잘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나중에 유키코에게 물었더니 오전오후 합해서 최대 열 자루 정도 연필을 쓰는 것이 일의 정확성도 지켜지고, 연필도 정성껏 다루게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보다 더 깎아야 하는 것은 필압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난폭하거나 너무

서두르거나 그중 하나로, 즉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먹고 자고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야. 이들은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생각해야 돼. 먹고 자는 것에 관심 없이 사는 곳만 만들겠다는 것은 그릇만 만들겠다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선생님은 몇 안 되는 자작 해설에서 ‘가족 구성이 같다 하더라도, 맞벌이 부부의 집과 전업주부가 있는 집은 자연히 플랜이 달라진다’고 하고 있다.

 

 

 커피가루가 중얼거리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강한 향내가 떠돈다. 아침 냄새다.

 

 

 “손이 닿는 부분은 현관 손잡이 빼고는 나무가 좋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현관문은 안과 밖의 경계선이니까 금속을 쥐는 긴장감이 있는 편이 좋지. 밖에 있는 문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으면 실내가 밖으로 빠져나온 것 같아서 뭔가

쑥스러워.”

 

 

 “건축에서 세부라는 것은 태아의 손가락과 같아. 주종관계에서의 종이 아니야. 손가락은 태아가 세계에 접촉하는 첨단이지. 손가락으로 세계를 알고, 손가락이 세계를 만들어. 의자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야. 의자를 디자인하다 보면 공간

전체가 보이기도 하지.”

 

 

 생각해서 손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손을 움직이는 것이 생각으로 연결된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는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기성품이 오래가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건 완전한 환상이야. 기성품은 일정 기간이 되면 망가지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회사가 유지되지. 나무 가구는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만 손질만 잘하면 오십 년, 백 년도 쓸 수 있지.”

 

 

 “독서대같이 작은 것도 건축이죠? 지탱하기도 하고, 접기도 하고, 열기도 하고. 밸런스도 중요하고. 얼마나 쓰임새가 좋은지는 설계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엄흑은 집 밖에 머물러 있었다.

 

 

 먼지도 곰팡이도 얼룩도, 권연벌레 등의 해충도 공기 흐름에 약하다. 미풍이 책장을 빠져나가게끔 설계하면 고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책장을 등판으로 완전히 막으면 바람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

 

 

 “즉 광장은 시민의 것인 거야. 일본인은 광장을 가지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아마 없겠지.”

 

 

 “옆으로 불어닥치는 태풍의 비는 생각하지도 못한 곳으로 들어와서 비가 새는 경우가 있어. 미늘 판자벽 사이까지 빗물이 들어와서 그것이 모세관현상으로 위로 빨아들여져서 안쪽으로 새기도 해.”

 

 

 “씨가 떨어져서 정신 차리고 보니 번식해 있었습니다, 라는 그런 느긋한 이야기가 아니고, 옆에 얌전하게 자라고 있는 꽃의 영역까지 다리가 달린 것처럼 계속 파고드는 거예요. 꽃의 얼굴에도 묘한 주장이 있고요.”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은 나중에 생긴 것으로 아직 그다지 단단한 건축물은 아니라는 증거일 거야.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걸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무언가가 뒤집혔을 때 작업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그것이 확실하게 구원이 된다.

 

 

 선생님은 배관처럼 정렬한 형광등 빛을 싫어했다.

 

 

 이구치씨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나를 똑바로 보았다. 그 눈을 본 순간 나는 갑자기 감정의 뚜껑이 벗겨질 것 같아서 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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