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문학동네, 2021(전자책 발행)
그는 날이 저물기 전에 요새에 도착하려고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오는 협곡 안쪽에서, 산그늘이 기어올라오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그림자는 골짜기 건너편 산허리를 돌아 막 드로고의
눈높이까지 와서는 질주를 멈추고 숨을 고르는 듯한데, 마치 기세를 꺾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 같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잠입해서는 사면과 바위를 타고 또 올라가고 있다. 말 탄 그를 뒤에 남기고.
바람이 길게 내려오는 물줄기를 흔들고, 메아리가 수수께끼 같은 놀이를 벌이는가 하면, 물이 바위에 부딪혀 서로 다른 소리가 나면서 끊임없이 말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언제나 이해를 갈구하지만 결코 그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 삶의 말들이었다.
한편, 책상 맞은 편의 시계추는 계속해서 삶을 바스러뜨리고 있었다.
태양은 전처럼 서둘러 일몰을 향해 저물어가는 대신, 하늘 한가운데서 조금씩 더 머물며 쌓인 눈을 덥석 먹어치웠다.
밤이면 막사마다 배낭을 보관하는 선반이며 소총 받침대, 문짝, 그리고 대령의 방에 있는 단단한 호두나무 재질의 아름다운 가구들까지, 가장 오래된 물건을 포함한 요새의 모든 목재가 어둠 속에서 삐걱거렸다.
낮의 회색 페이지와 밤의 검은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가면서, 드로고와 오르티츠에게(어쩌면 다른 나이든 장교들에게도) 더는 떠날 기회가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늘어났다.
입구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뜨개질을 하느라 분주했고, 그녀의 발치에 놓인 소박한 요람 안에서는 어린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드로고는 놀라움을 느끼며 그 경이로운 모습을 바라봤다. 어른들의 잠과는 너무나 다른 달콤하고
깊은 잠이었다. 그 작은 생명 안에는 아직 산란한 꿈들이 생겨나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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