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북하우스, 2021(전자책 발행)
우리는 단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우리가 산문과 책에서 지각하고 이해하는 세상이 우리가 지각하고 이해하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혀. 이를테면 우리는
‘지구온난화’ 같은 단어들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기면서 훨씬 사소한 단어들에는 쉽게 발끈한다. ‘지구온난화’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속속들이 감지할 수 있다면 이 단어는 아이들이 옛날 이야기를 듣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와 같은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야 한다.
해수 산성화 논의는 2011년에 언론에 고작 다섯 번 실릴 정도로 지지부진했으나 미국의 연예인 ‘카다시안’은 180번 실렸다.
난관, 무작위, 무질서는 우리의 무릎을 꿇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게 한다. 난관이 없으면 우리는 시들고 약해진다.
미국의 트럭 운전기사들은 예전에는 날벌레로 유리창이 새카맸는데 이제는 어느 주에서나 깨끗해졌다며 경고한다.
이런데도 ‘여섯 번째 대멸종’이 호들갑처럼 들리는 것은 블랙홀이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영상은 흐릿하고 배경음은 잡음뿐이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과업이 놓여
있다.
오늘날 하도 많은 종이 위험에 처해 있어서 생물학자들은 자신이 노아의 방주 선발위원회에 속해 있다고 느낄 정도다.
우리가 과학자들의 예측을 접하고도 지금 당장 급진적 조치를 위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도 이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해 비슷한 판단을 내릴 것이다. 우리는 수치스러운 조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생산된 모든 플라스틱의 절반이 2000년 이후에 생산되었다.
오크는 아이슬란드에서 공식적으로 빙하 지위를 잃은 최초의 빙하다. 50제곱킬로미터에 이르던 이 빙모가 이제 1제곱킬러미터의 빙괴가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빙하에서 찍은 영상을 보다가 할머니의 모습을 더 찍어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다. 할머니의 젊음은 한때뿐이지만 빙하와 풍경은 언제든 담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틀렸다. 알고 보니 빙하는
사람만큼이나 덧없는 존재였다.
빙하가 녹아 수량이 증가하면 거짓 번영이 찾아올 수 있다. 이것은 은행에서 예금을 전부 인출하거나 건초를 모조리 태울 때와 비슷하다. 수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삶의 질, 토양 식생, 지하수 수량, 심지어 전기 생산이 개선되는 것은
불길한 전조다.
중국은 전체 배출량으로 따지면 세계 최대의 오염국이지만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보면 미국이 16.5톤으로 더 많다.
인도의 평균 배출량은 아이슬란드의 약 10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중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면에서 많은 서구 나라를 앞질렀다. 중국의 1인당 배출량은 스페인, 스웨덴, 프랑스, 영국을 뛰어넘어 독일에 따라붙고 있다.
옥스팜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CO2 배출량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1인당 배출량은 가장 가난한 10퍼센트 175명의 배출량과 맞먹는다. 반대로 기후변화의 결과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혹독하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형편이 못 되며 자유롭게 이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땅들이 침수되면 그곳 주민들이 초래하지 않은 이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제임스 와트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다. 그를 인류의 파멸과 연관시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그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다. 우리는 와트에게 삶을 빚지고 있다. 그는 어머니 대지의 비밀을 파헤쳐 그
시스템에서 구멍을 찾았으며 우리를 발아래 검은 태양과 맺어주어 우리로 하여금 대지의 배 속에서 검은 젖을 빨게 해주었다. 우리는 100만 년 묵은 광합성에 올라타 높이 날면서 계절의 속박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여름을 살아간다. 연중
어느 때나 신선한 딸기를 먹을 수 있으며, 금방 기한이 끝나도록 특별히 설계된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동일한 제품에 대한 욕구를 효율적으로 끊임없이 창출할 수 있다. 지구는 쉽게 도발되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야 움찔했다.
지구가 우리를 떨어내려 한다. 석유는 우리의 생명이며 또한 우리의 죽음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은 백악관에서 나오는 모든 공식 자료에서 조직적으로 지워지고 있다. 미국 내 대다수 정부 웹사이트와 기후 정보 출처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한 가지 생각으로 뭉친다는 발상이 가장 터무니없어 보이는 곳은 이스라엘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수 천 년 전에 벌어진 사건들과 고대 사본에 기록된 글이 사람들을 양립 불가능한 집단들과 동맹들로 갈라놓았다.
경제성장은 지속 가능성과 지속 불가능성을 구별하지 않는다. 튼튼해지는 것과 뚱뚱해지는 것, 자궁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과 종양이 자라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에게 성장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양성이든 악성이든.
어느 나라에서든 전 세계 산호초를 희생시킬 권한을 선출 정부에 위임하는 선거를 치른 기억도 없다. 산호초가 협상의 조건으로 이용된 기억도 없다.
우리는 산호초를 희생시키기로 결정한 세대다. 그리고 산호초는 전체 그림의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공감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그리스어 ‘아포칼립스’의 진짜 의미는 무언가를 ‘폭로’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건들은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폭로하고, 스모그와 스모크(연기)를 폭로하고, 우리의 공급망을 폭로하고, 정부의 능력과 무능력을 폭로하고, 불평등과 특권을
폭로한, 진정한 아포칼립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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