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육사), 요코야마 히데오, 시공사, 2013(초판 7쇄)

 

 

 “진심으로 대하면 기자들은 기어오릅니다. 이해하는 시늉만 하십시오.”

 

 

 ‘조사광’, ‘데이터 제일주의자’라 불리는 사내다. 지난 1년 반 동안 형사부에까지 정보원을 만들었다는 뜻이리라.

 

 

 실패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윗분들이 실패라고 생각할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 이시이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사고로 해결책을 모색한 자신이 우스웠다.

 

 

 고교 시절, 한 번도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남자의 그 얄팍한 가슴 근육 너머에서 어떠한 원리가 구축된 것일까.

 

 

 같은 가죽을 쓴 괴물.

 이제 그 역시 후타와타리와 같은 곳에 서 있었다. 저도 모르게 경무부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일시적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벗을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팔을 넣는다.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 벌, 또 한 벌 두껍게 껴입는다.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 옷은 이내 피부로 변해 절대 벗을 수 없는 삶의 방식이 되리라. 

 

 

 가끔 2층에서 내려와도 부모가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머리를 홱 돌리거나, 벽을 보고 복도와 거실 가장자리로 슬금슬금 걸었다. 오른쪽 얼굴이 더 못생겼으니까. 나중에야 아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추형 공포. 신체 추형 장애.

 

 

 뇌는 팔다리와 상의하지 않는다. 팔을 움직이고 싶으면 팔에다, 다리를 움직이고 싶으면 다리에다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오늘 밤에는 패배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재력이 없는 기자는 이렇게 때때로 홍보실 직원들을 찾아온다.

 

 

 요즘 사람들의 시선은 메마르고 냉정하다. 경찰 역시 민간조직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오욕에 찌들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경찰에게 바라는 건 정의도, 친근함도 아닌 안전을 보장하는 ‘기계’로서의 역할이다. 자신과 가족의 생활 반경에서 신속하게 위험을 제거하는 고성능 기계를 원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형사로 살아온 세월이 짧아도, 실적이 없어도, 부장 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형사부의 우두머리다운 얼굴을 지니게 된다. 몇 건 안 되는 실적을 뻥튀기하듯 부풀려 이야기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원숭이처럼 흥분해 고함을 지르며,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수사 정보의 홍수 속에서 놀아나다 보면 어느샌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듯 형사부에 몸도 마음도 물들게 된다. 

 

 

 미카미는 하수도의 파수꾼이었다. 인간의 욕망으로 더럽혀진 진흙을 떠내 불 위에 올려놓고 끓인 다음 휘저어서 쉼 없이 잿물을 만들어왔다. 그에게 형사란 직업이 아니라 피와 살의 일부였다.

 

 

 현관에서 엉엉 우는 모습을 훔쳐보고 은근한 쾌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미카미도 스물여덟 해 동안 부하로 살아왔기에 잘 알고 있다. 진심으로 순종하는 부하란 존재하지 않으며, 부하의 내면을 파악하고 있는 상사 역시 없다. 그런데 저 혼자 멋대로 신이라도 된 양 착각한다. 부하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 쓸지를 생각하며 이 친구는 이렇다 저렇다 분류해 저 편할 대로 알기 쉬운 단색의 라벨을 부지런히 붙여왔다.

 

 

 “난 본청에 돌아가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이런 시골구석에서 단 1칼로리도 허비하기 싫어요.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단 말입니다.”

 

 

 “케네디를 댈러스로 보내지 말라는 말 아나?”

 

 

 형사부장을 기호라고 딱 잘라 말하는 남자가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일 리가 없다. 가정이라는 이름의 기호를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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