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Philosopher, VOL.19
사랑이 두려운 시대의 사랑법
1960년대 이후로 만들어진 노래 중 70퍼센트는 사랑에 관한 것들이다(그 뒤를 바짝 쫓는 ‘섹스’에 관한 노래는 1960년대 이후 비중이 18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늘었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5000만 부가 넘는 로맨스 소설이 팔렸다. 이는 전체 책 판매량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치다.
그런데 우리가 연인과 특성이 똑같은 다른 사람에게 반했다면, 우리는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그 특성을 사랑하는 걸까? 당신은 연인을 그 사람의 유머 감각 때문에 사랑하는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도 똑같이 진리 수 있는 유머 감각을 사랑하는가?
헤겔 철학의 핵심 개념인 ‘아우프헤벤Aufheben’, 즉 변증법적 지양을 살펴보자. 이 개념의 특성은 무엇일까? 아우프헤벤이란 상반되는 모든 가능성과 가치관이 충돌할 때, 당장은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듯해도 결국 화합될 수 있다고 희망하는 기발한 개념이다. 헤겔은 대립하는 어느 한쪽도 완벽하게 옳지는 않으므로(아우프헤벤에는 ‘폐기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이 발전함에 따라 모순되는 이치가 하나로 융합되어 한층 새롭고 정확한 진리로 재정립된다고 보았다. 이렇게 한 차원 높아진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우프헤벤에는 ‘고양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기존의 모순은 사라지고 없다
한 가지 큰 질문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과 도덕성을 통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인데, 이런 도덕성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거나 혹은 적어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대접해야 한다는 공정성 원칙과 연결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단지 내가 사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것이 한 가지 질문이었다. 또 다른 질문은 다른 사랑보다 더 중요한 사랑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사랑의 대상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연애 상대 등이 있다. 나는 내 삶에서 그들의 역할과 중요성 사이에 어떤 차이점과 유사점이 존재하는지 연구하고 싶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삶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삶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죽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랑! 이 단어는 신이나 사람, 삶, 스포츠는 물론 피자에도 사용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상태는 끌림, 애정, 심취, 격정, 신성, 애착, 지복, 만족, 충동, 우정, 가슴앓이, 고통, 히스테리, 광기, 살인 충동 등 광범위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마치 모든 생명체를 말horse이라고 부르면서, 진짜 말은 잊어버린 경우와 같다. 혹여 진짜 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이 어떤 상태를 유발했지만, 그 동인이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노팅엄트렌트대학교는 ‘셀카 행위 척도’를 다음과 같이 고안했다. 경계성 셀카 증후군: 하루에 셀카를 3장 이상 찍지만 게시하지는 않는다. 급성 셀카 증후군: 하루에 셀카를 3장 이상 게시한다. 만성 셀카 증후군: 하루에 셀카를 6장 이상 게시한다.
일부일처제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의무화된 남녀 간의 결합 제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버트런드 러셀은 경제체제와 남녀의 결합 방식이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고, 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주장을 계속해왔다.
2018년 시카고대학교 국가여론조사센터가 실시한 종합사회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 13퍼센트, 기혼 남성 20퍼센트가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어느 때보다 불륜을 두려워하는 시대가 되었으나 우리가 불륜을 집단적으로 혐오하는 이유는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에 불륜은 신께 저지른 죄였기에 처벌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요즘은 종교가 아니라 낭만적 사랑을 위협하는 행위이기에 벌받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네트워크에 콘텐츠를 올려서 스스로 상품화되고, 그들의 자아는 팰로앨토에 있는 저커버그에 의해 수확된다. 이것은 실리콘 밸리의 기묘한 자아 수확 사업으로, 이들 기업은 수많은 나르시시스트들을 자극하여 [소셜미디어를 위한] 콘텐츠를 생산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에 관한 수많은 질문의 핵심에는 두 가지 충동이 존재한다. 하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정확히 알고 싶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에게 거짓말도 좀 하고, 데이트를 하거나 위험을 감수하며서 여러 모험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충동이 다 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긴다.
또 다른 문제는 내가 남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정신세계를 구축하려면 다른 사람들을 그 세계 속으로 끌어들여야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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