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하지 말고 납득하게 하라, 한철환/김한솔, 해의시간, 2020(초판 8쇄)
현대 협상학에서는 누가 사고 누가 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협상이 깨졌을 때 대안이 있는 사람을 갑이라고 인정한다.
좋은 의도가 왜 갈등을 일으킬까? 인간은 좋은 의도가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다. 진심으로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으니 떳떳한 것이다. 그런데 이 당당함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거칠게 말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이를 심리학으로 설명하자면 ‘자기애’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정작 상대방에게는 무감각한 채로 ‘상대를 아끼고 걱정한다’는 자신의 좋은 의도만 사랑하는 현상이다.
성과평가에 대한 불만 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나는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했는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냐”고 모든 업무에 책임을 위로 돌리는 직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조직에서 주어지는 목표는 ‘항상’ 과도하다. 하지만 이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어떤 목표를 갖고 움직이게 할지가 리더의 가장 큰 숙제가 된다.
영국의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젊은 선수가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1부 리그보다 2부 리그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비밀은 출전 횟수에 있었다. 프로선수의 역량은 얼마나 많은 경기에 꾸준히 나올 수 있는가와 비례하기 때문이라는 게 통계에 대한 해석이다.
비즈니스의 목적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과 창출을 위한 중요한 수단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열심히 하느냐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상사의 의중을 알아차려야 한다. 비즈니스맨의 성과는 결국 직속상사의 성과에 기여하는 정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사의 기대치를 알고 그것에 집중했을 때 나오는 결과치가 바로 조직의 성과다. 그러므로 일을 시작하기 전 상사가 직원에게 기대하는 바를 명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잠깐! 왜 이 양식의 이름이 ‘Keep Your Job’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미국 몇몇 기업에서는 리더가 작성한 내용과 조직원이 작성한 내용이 정해진 비율 이상 다를 때, 그 조직원을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활용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셈이다. 무섭다고? 조직에서 자신에게 바라는 역할을 충실히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자.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서원 한 명을 떠올려보라. 그 직원의 장점과 단점을 각각 다섯 사지 이상 쓸 수 있는가? 단, 조건이 있다. 부서원이 했던 ‘구체적이 행동’과 함께 써야 한다. 이 질문에 자신 있게 펜을 들고 써내려가지 못한다면, 당신의 관찰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리더가 관찰을 통해 ‘이 대리는 업무 진행이 너무 느리다’는 판단을 했다. 자, 이것이 진짜 관찰일까? 아니다. 이건 ‘추론’이다. 상대의 행동으로 미루어 생각한 나의 주관적 판단이라는 뜻이다. 관찰과 추론은 다르다. 관찰은 ‘이 대리는 월말결산 보고서를 지난 3개월간 매번 마감일 3~4일 후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이런 리더의 행동을 심리학에선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effect’으로 설명한다. 인간 판단력의 불완전성을 뒷받침하는 두 번째 근거다. 사람들이 본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는 그 원인을 주로 상황적 요인에서 찾는데,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행위자의 내적, 즉 기질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경향을 말한다.
앞의 사례에서 리더는 자신의 지각을 엉망인 서울의 교통 상황 탓으로 돌렸다. 즉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늦을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반대로 구성원의 지각은 게으름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상대방의 ‘기질’이 지각의 원인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선 ‘변호사’가 돼서 철저히 감싸려 하고, 남의 작은 실수에 대해선 ‘검사’ 같은 태도로 먼지 하나까지 털어내려 하는 것이다.
각자 나름대로는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 스스로 ‘이 정도면 됐다’, ‘이게 최선’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이때 필요한 게 직장 리더의 피드백이다. 일이 제대로 된 건지 아닌지, 회사에서 기대하는 수준이 맞는지 아닌지를 거울처럼 비춰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표현을 ‘판단 화법’이라고 말한다. 상대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재판관의 언어로 판단을 한다는 의미다.
그럼 어떤 화법이 필요할까? 상대의 행동을 바꾸려 한다면 주어가 ‘나’인 ‘나 대화법 I-message’이 필요하다. 상대의 구체적인 행동, 그로 인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고, 나의 의도를 제시하는 말하기 방식이다.
1단계는 직원에게 ‘꿈과 비전’을 묻는 것이다. 직장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가정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이를 to be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게 명확하지 않다면 자기계발 코칭은 불가능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직원이 진짜 ‘뭘 원하는지’를 먼저 찾아보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면 2단계로 넘어간다. 두 번째 질문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한 것이다. 비전 달성에 필요한 역량, 즉 to have를 확인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스스로’ 찾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가 ‘시켜서’ 할 때보다 ‘스스로’ 원할 때 실행력이 배가 된다는 걸 잊지 말자.
마지막 3단계, 그것을 갖추기 위해서 지금 실천해야 할 것, 즉 to do를 물어야 한다.
너무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잊는 질문을 하나 해보자. 국가대표 선발의 목적이 무엇인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를 선발해 국제경기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다. 특정 선수에게 연금을 주고 병역을 면제해주려고 있는 제도가 아니다… 이제 조직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조직에서 성과평가를 하는 이유는 뭔가? 직원 개개인의 성과에 맞는 합당한 보수를 주고 공로를 인정해주기 위한 절차가 성과평가다. 승진 대상자에게 필요한 점수를 몰아주기 위해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경청의 갖아 낮은 수준을 표현하는 ‘배우자 경청spouse listening’이라는 말이 있다. 안타깝지만 너무나 공감되는 단어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말한다. ‘인정’과 ‘공감’을 착각하지 말라고. 인정은 상대의 주장에 ‘확실히 그렇다고 동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은?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의도와 욕구를 알아주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평가기간만 되면 ‘인정’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욕구에 ‘공감’하는 단계를 싹둑 생략하는 상사들이 의외로 많다. 기억하자. 공감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정서적 선물이라는 것을.
2016년 3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930명에게 물었다. “회사가 직원의 성과를 적절히 관리하고 보상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63%의 응답자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 가운데 7.9%의 응답자는 ‘평가 결과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조직원 서로가 중시하는 업무가치도 다를 수 있다. 안정성 대 도전, 스피드 대 꼼꼼함 식으로 말이다. 조직이 중시하는 업무가치를 명확히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서로 다른 업무가치를 가진 조직원들은 서로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하며 불필요하게 싸우게 된다.
경쟁력은 경쟁을 통해 커진다.
경영에서 말하는 ‘관리’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문장이 있으니, 바로 “측정되지 않은 것은 관리될 수 없다”이다.
한 명의 구성원으로 있을 때와 리더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보는 관점, 생각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하나의 구성원일 때는 많은 것이 ‘나’ 중심이다. 실적평가를 할 때도 ‘작년보다 5% 더 했으니까!’ 더 좋은 평가를 받으리라 기대하는 게 ‘당연한’ 판단이다. 하지만 리더는 어떤가? 개개인의 집합인 ‘조직’ 관점에서 한 명 한 명을 평가한다. 결국 ‘팀원들 평균 매출 성장률이 10%인데, 이 직원은 5% 성장밖에 못 했으니 좋은 평가를 줄 순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보 공유가 답이다.
리더가 A라는 구성원의 실적에 대한 점수를 매기기 전에 구성원의 자가평가 결과를 봤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스스로에 대해 90점의 점수와 함께 다양한 실적 리스트를 쭉 정리해놓았다. 그럼 리더의 머릿속은 어떻게 될까? ‘이 친구 꽤 열심히 했네? 내가 몰랐던 게 있나?’ 이런 고민 끝에 80점과 90점 사이에서 그 직원의 점수가 결정된다.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스스로 아주 냉정하게 평가한 구성원이 스스로의 성과에 70점을 줬다면? 그 직원의 점수는 70점에서 80점 사이가 될 확률이 높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첫 정보가 전체 판단의 중요 잣대가 되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최소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우리는 ‘성과’를 위해 달려야 한다. 친목 도모의 모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리더의 역할은 결국 잘 되게 해주는 것, 다시 말해 구성원 개개인의 경쟁력을 극대화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SKEPTIC, VOL.30 _ 스포츠에서 젠더의 경계는 어디인가 (0) | 2022.08.16 |
---|---|
콘크리트 블론드 - 마이클 코넬리 (0) | 2022.08.04 |
블랙 아이스 - 마이클 코넬리 (0) | 2022.07.28 |
블랙 에코 - 마이클 코넬리 (0) | 2022.07.21 |
인포메이션 - 제임스 글릭 (0) | 2022.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