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이스, 마이클 코넬리, 알에이치코리아, 2019(전자책 발행)
보슈는 형사과 사무실이라는 어항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유일한 물고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기심 어린 눈들을 피하고 싶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서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 남자가 거울 속에 서 있었다.
그가 담배를 붙여 물었지만 테레사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전에도 담배를 핀다고 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딱 한 번 보슈가 부검을 참관하고 있을 때, 그녀가 옆의 검사실에서 들어오더니 하루에 세 갑씩 피워댄 40세 남자의 폐를 보여주긴 했었다. 그 폐는 트럭에 깔린 낡은 검정색 구두 같았다.
보슈는 행운을 빈다고 말했지만 진심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정치적인 법의국장에 정식으로 임명되면 뭐든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런 자리가 왜 그렇게 탐이 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위에선 자살로 몰고 가고 싶어 했죠. 그런데 법의국에서 제동을 걸어서 그럴 수가 없게 됐어요. 하지만 더러운 빨래바구니를 대로변에 놓아두어서 기자들이 달려들어 뒤지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보슈가 갖고 있는 것은 전체 그림의 조각들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그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 붙일 풀이었다. 그가 처음 경찰배지를 받고 밴나이스 경찰서 강력반에 배속되었을 때 만난 파트너는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풀이라고 말했다. 풀이란 본능, 상상력, 때로는 추측, 그리고 대개의 경우에는 순전히 운으로 만들어진다고도 했다.
발 베르데 산업 단지의 흉한 실루엣 위로 웃는 입 모양 같은 달이 떠 있었다.
이제 그는 죽은 자들 속에 혼자 남았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콘크리트 블론드 - 마이클 코넬리 (0) | 2022.08.04 |
---|---|
설득하지 말고 납득하게 하라 - 한철환, 김한솔 (0) | 2022.08.01 |
블랙 에코 - 마이클 코넬리 (0) | 2022.07.21 |
인포메이션 - 제임스 글릭 (0) | 2022.07.20 |
NewPhilosopher_Vol.18_진실이 사라진 시대의 진실 (0) | 2022.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