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대화, 마셜 B. 로젠버그, 한국NVC출판사, 2023(개정판 18쇄)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이 먼저 변화 하기를 기다린다.
그 사람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판단의 세계에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지만 얻지 못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두는 대신,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잘못의 성질을 따지고 분석하고 단정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따라서 내가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애정을 아내가 원한다고 느끼면 나는 아내를 ‘의존적이며 애정이 결핍된 여자’라고 판단한다. 반대로 아내가 표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애정을 내가 원할 때에는, 아내를 ‘냉정하고 둔한 여자’라고 판단해 버린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교육청의 방침 때문에 성적 평가를 해야만 한다.”라는 표현을 “나는 ~을 원하기 때문에 성적 평가를 하기로 선택했다.”로 바꿔서 말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 교사는 주저 없이 바로 “나는 내 직업을 유지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성적 평가를 하기로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아요. 왜냐하면 책임감이 느껴지거든요.”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렇게 말해 보시라고 권하는 겁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은 인간 지성의 최고 형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 - 에픽테토스 Epictetus, 그리스 스토아학파 철학자
불행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필요나 욕구라는 면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옷이 옷걸이에 걸려 있기를 바라는데 의자 위에 놓여 있으면 아이들이 게으르다고 판단한다. 또는 직장 동료들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하지 않으면 그들을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문제는 저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자 농장주 중 한 명이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거요!”
흔히 그렇듯이, 두 집단은 자신들의 욕구를 명확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상대의 잘못으로 보이는 것을 분석하는 데 더 능숙했다.
한번은 내 어머니가 여성들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데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에 참가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갑자기 일어나 밖으로 나가시더니 한동안 돌아오지 않으셨다. 다시 돌아오셨을 때에는 창백한 모습이어서 나는 “어머니,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그래, 괜찮다.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아주 힘든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라고 대답하셨다.
“지난 40여 년 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네 아버지가 들어주지 않아서 화가 났는데, 내가 원하는 것이 정작 무엇인지 네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분명하게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단다.”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면 더 하고 싶어요.”
이 노랫말들은 부탁을 부정으로 표현했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문제점을 보여준다. 즉, 실제로 무엇을 부탁하는 건지 분명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저항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워크숍에서 불화를 겪고 있는 어느 부부가 구체적이지 않은 표현이 그들 사이에 이해와 소통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지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어요.”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남편이 반박했다.
“언제요,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아내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긍정적인 행동언어로 말해 보라고 요청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내게 자유를 주었으면 해요.”
하지만 이 말 역시 막연하여 방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자신의 부탁을 좀 더 명확하게 하려고 고심하더니, 그녀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저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제가 원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든 남편이 ‘좋아!’하고 웃으면서 말해주는 거예요..”
내담자: “사랑받고 싶다고 할 때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잘 생각해보니까, 내가 무얼 원하는지를 상대방이 나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항상 그것을 해 주면 좋겠다는 거네요.”
마셜: “명확하게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만약 조건이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여려울지를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강요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보이지 않는다. 복종 아니면 반항이다.
인간관계에서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가진 선입견과 판단에서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우리는 공감하는 대신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조언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거나, 우리의 견해나 느낌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공감은 상대방이 하는 말에 우리의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해 주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더 좋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가 온 존재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방해한다.
상대방의 말을 반복해 주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약해 준다. 노사 협상에 관한 연구들에 의하면, 협상 당사자들이 저마다 자기견해를 말하기 전에 바로 앞 사람의 발언을 정확하게 되풀이해서 확인하기로 합의한 경우, 분쟁 해결에 드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비공식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만약 당신이 상대가 듣고 싶은 말보다 더 많이 말하고 있을 때 상대방이 계속 듣는 척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중단시켜 주기를 바랍니까?” 응답한 사람들 중 한 명만 빼고 모든 사람이 상대가 말을 중단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웃음과 다독임, 또 그들이 주는 ‘좋은 사람’ ‘좋은 부모’ ‘착한 시민’ ‘성실한 직원’ ‘좋은 친구’ 같은 평가들에 중독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일을 하고, 우리를 싫어하거나 벌을 줄 것 같은 일은 피한다.
화가 날 때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서 잘못을 찾는다. 우리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아서 상대방이 무슨 잘못을 했고 어떤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하거나 판단한다. 나는 이것이 바로 분노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잘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분노의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와 같은 생각에 있는 것이다.
모든 폭력은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착각하면서 상대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을 때 오는 결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면 마침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할 터이고 그러면 상대방이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서는 정신병원에서 내려지는 진단이 환자가 보이는 증상 자체보다는 그 정신과 의사가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배웠듯이, 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서투르게라도 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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