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켑틱, VOL.36, 아이를 위한다는 착각

 

 

 테스토스테론 신화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모든 엄격한 과학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성욕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클래식을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남은 건 이미 죽은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멋지게 차려입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재해석하고, 재해석하고, 재해석하는 것뿐이다. 디테일의 차이를 모르는 이에게는 재탕의 재탕이다. 일종의 제사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반대자들을 설득하거나 감화시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반대자들이 다 죽고 나서 새로운 진리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나타날 때 비로소 승리한다.” 이 때문에 과학계에는 다음과 같은 농담이 회자된다. “과학은 장례식을 통해 발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떻게 새로움을 유지하는가’ 이것이다. 우리는 이탈리아 같은 관광지도 없고, 미국이나 중국처럼 문화를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으며, 일본처럼 별 것도 아닌 문화를 특별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우리의 콘텐츠는 변화다. 끊임없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계 시장에서 가장 빨리 도태될 것이다. 

 

 

 사실 인간됨에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과 인간으로 길러지는 것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마틴 쿠니Martin Couney는 달수를 못 채우고 태어나 부모조차 친권을 포기한 이른둥이(당시의 이른둥이들은 대부분 사망했다)들을 맡아 따뜻하고 깨끗하게 관리되는 투명한 유리상자 안에서 키우는 모습을 세계 각국의 과학박람회장에서 시연한 인물이었다. 일종의 인큐베이터 장비였던 쿠니의 유리상자는 ‘아기 부화장’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던 어른둥이들이 유리상자 안에서 토실토실 살이 붙으며 자라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창의성을 문제를 잘 정의하는 능력이라고 이해했다……. 또한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창의성을 복잡한 물질세계에서 어떤 질서 정연한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봤다. 

 

 

 인간은 코페르니쿠스를 통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우주론적 모욕을 경험했고, 다시 한 번 다윈을 통해 인간이 다른 생물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물학적 모욕을 겪었다. 또한 프로이트를 통해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심리학적 모욕을 경험했다. 이제는 더 나아가 예술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인간의 능력마저도 인간 고유의 능력이 아니라고 말하는 미학적 모욕을 견뎌야 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아토초의 시간대에서 보면 작고 빠른 원자조차도 그저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펨토초 과학이 원자를 관찰하고 조절한다면, 아토초 과학은 그보다 수천 배 작고 빠른 전자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제어할 수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는 성공 여부를 예측할 수 없음에도 중요한 문제에 꾸준히 도전한 것들이었으며,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문제는 모두 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더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결맞음 연구의 시대’를 접어야 한다.

 

 

 아직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도전하는 연구에서는 어떤 시도가 성공할지 예측할 수 없다. ‘성공’은 후행적 평가일 뿐이다. 따라서 다양한 시도를 인정하고 오랫동안 꾸준히 연구자를 지원해야 한다. 연구 재정의 효율성 관점에서는 이런 모습이 지나치게 많은 연구진이 연구비를 ‘나눠먹는’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그 결과 투자는 포부가 작더라도 성공이 담보된 연구에 집중된다.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이런 오류의 반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호기심을 갖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연구자의 용기를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2023년 노벨 화학상은 ‘양자점quantum dots’의 발견 및 합성에 관한 공로로 프랑스 태생의 미국 물리화학자 문지 바웬디, 미국 물리학자 루이스 브루스, 러시아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알렉세이 예키모프, 세 명에게 수여되었다. 양자점이란 반도체 물질로 이뤄진 나노 결정으로, 크기가 작을수록 에너지가 큰 청색의 형광을, 크기가 클수록 에너지가 작은 적색의 형광을 내는 물질이다. 양자점 연구의 결실은 LED, 태양 전지, 수술 과정에서 암 조직 제거를 위한 경계 포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이 카드뮴이 없는 양자점을 합성하고 이를 적용해 QLED TV를 출시한 사례를 들 수 있다. 크기에 따라 다양한 빛을 발하는 양자점의 발견과 고품질 합성은 빛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세계를 활짝 열었다.

 

 

 생식적 격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격리를 지금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만약 사자와 호랑이가 같은 종으로서 수백 수천 세대에 걸쳐 자유로운 교배가 가능하여 격리가 없었다면 호랑이와 사자의 중간의 형태를 띤 어떤 단일한 종이 세상에 존재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생식적 격리가 오랫동안 작동했기 때문에 사자와 호랑이는 서로 중복되지 않는 고유한 특징을 갖는 것이다.

 

 

 오늘날 주변에 존재하는 생물 대다수는 더 이상 우리의 움벨트가 아니다. 사실상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는 능력은 수천 년 전 농경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70퍼센트가 산지라 그 후에도 여전히 채집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세상에 복잡해지면서 공통의 움벨트는 줄어들고 자기만의 움벨트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멀리서 오는 차를 보고 단번에 어느 회사의 어떤 차인지, 심지어 몇 세대 모델인지도 알아차린다. 그 결과 한집에 사는 가족들조차 기본적인 대화 외에는 따로 떨어져 각자의 움벨트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오늘날 사람들의 움벨트에서 미미한 자연의 존재감이 결국 자신들이 “지금 지구 생명의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이 거대한 규모의 상실을 염려하는 것은 고사하고 느끼기조차 쉽지 않게” 만들었다고 한탄했다.

 

 

 “평균적으로 부모 소득의 10퍼센트 증가는 자녀 소득의 3.4퍼센트 증가와 관련이 있다.” 이는 상당한 차이로 최상위 소득부의 부모를 가진 아이가 최하위 소득분 부모의 자녀와 비교해 평균 34퍼센트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효과는 인종과 무관하게 나타난다. 소득 상위 5분위에서 태어난 흑인 자녀가 그 자리를 유지할 확률은 하위 5분위에서 태어난 백인 자녀가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확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부유한 부모를 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스탠퍼드 대학교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그루스키는 기회의 상품화에 관한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모가 자녀의 중산층이라는 결과를 직접 구매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점을 창출하고 중산층이 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학교, 거주 지역, 정보에 유리하게 접근하면서 간접적으로 기회를 구매할 수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정치학자인 아돌프 리드는 ‘지배 계급의 감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모델은 인구의 1퍼센트가 자원의 95퍼센트를 통제하는 사회라도 그 1퍼센트 중 12퍼센트가 흑인, 14퍼센트가 히스패닉계, 절반이 여성인 한 정의롭다고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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