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마음산책, 2021(1판 19쇄)

 

 

 가장 매력적인 건 목소리였다. 얼마나 알맞은 톤으로 절제된 단어를 사용했다. 하루에 하고 싶은 말의 양이 한정된 것 같았다.

 

 

 그날 루마는 어릴 때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거나 벌에 쏘였을 때처럼 자기 팔에 안겨 울었다. 그때처럼 아빠 노릇을 하느라 정작 자신은 아내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자기에게 부당한 역할을 요구해왔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어머니는 두 번째 남편으로.

 

 

 이렇게 밖에서 일하는 게 그리웠었다. 무릎 밑에 느껴지는 단단한 땅, 손톱 밑으로 스며드는 흙, 샤워를 마친 후에도 몸에 밴 그 냄새가 그리웠다.

 

 

 결혼만 하면 집을 떠나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엄마와 결혼했다. 하지만 아빠가 결혼한 건 연구와 일이었고, 엄마나 내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단단한 공간 속에 살고 있었다. 대화는 아빠에게 따로 노력을 들여야 하는 허드렛일이었고, 그 노력조차 실험실에서 쓰려고 아끼는 편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집을 사긴 했지만 아직도 세 들어 살 듯 살았다. 

 

 

 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엄마에게 증오한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한 건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니었다.

 

 

 모니카가 태어나고부터, 함께 시간을 보낼 궁리보다는 어떻게 하면 각자 혼자 시간을 보낼까 궁리하지 않았던가? 쉬는 날 아내가 아이들을 볼 동안 그는 공원에 가서 조깅을 했고, 또 거꾸로 아내가 서점에 가거나 네일 살롱에 갈 수 있도록 그가 아이들을 보았다.

 

 

 혼자 있는 그 순간을 그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오죽하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가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라 생각했었는지 말이다. 인생의 짝을 찾는다고 그렇게 헤매고서, 그 사람과 아이까지 낳고서, 아밋이 메건을 그리워한 것처럼 매일 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절실하게 혼자 있길 원한다는 건 끔찍하지 않은가. 아무리 짧은 시간이고, 그조차 점점 줄어든다 해도 사람을 제정신으로 지켜주는 건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부모는 자식들이 괴로워하는 일은 언제나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엄마가 점심 도시락으로 이상한 음식을 싸주어서 비웃음을 사는 것도, 감자 카레 샌드위치를 싸면 원더브레드가 초록색이 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세상에 불행하다고 생각할 게 뭐가 있느냐? 부모님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울증’이란 단어는 외국어였고 미국의 것이었다. 고생과 부당함은 인도를 떠날 때 두고 왔고, 자기 자식들은 절대 그런 일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소아과 의사가 아이들에게 평생 고통 없이 살라고 면역 주사라도 놔주었다는 식이었다.

 

 

 변한 건 라훌이었다. 이제 살이 붙었고, 섬세하게 잘생겼던 얼굴이 평범해 보였다. 목과 허리도 두꺼워졌다. 나이 먹고 정해진 건 없는 남자처럼 등이 구부정했다.

 

 

 다만 봄베이에서 처음 어머니가 죽어가는 걸 알았을 때 느꼈던 메슥거림이 희미하게 찾아왔어. 그 느낌은 그때 내 안에 스며든 후 한 번도 완전히 가신 적이 없어.

 

 

 기력이 되는 날에 어머니는 나에게 차로 바닷가에 데려다 달라고 했어. “내 루비 목걸이하고, 진주와 에메랄드 세트를 간직했다가 네가 결혼할 사람에게 주어라.” 언젠가 그곳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어머니가 말했어. “결혼하려면 아직도 멀었어요.” 내가 이렇게 말했더니 어머니는 자기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 결국 나는 어머니의 말을 지키지 못했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옷장 속 여행용 가방에 숨겨놓았던 그 납작한 빨간 보석함들을 열고 내용물을 볼 수가 없었어. 거기서 뭔가를 꺼내 미래의 행복을 준비해 놓는 일은 차마 할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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