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 우주인, 야로슬라프 칼파르시, 알에이치코리아, 2018(1판 1쇄)
우주에 나온 지 13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자궁’에서 안전띠를 풀고 나와 기지개를 켜며 열어젖힐 커튼이나 튀길 베이컨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화상 대화를 하며 지구와 우주에서 각자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일은 전염병이 건강한 살을 야금야금 파먹으면서 다음 해 여름 계획을 짜는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그래. 네 머릿속은 대답을 듣지 못해 혼란스러워. 강의 댐은 현실이라는 이유로 물의 생생한 즐거움을 가두지. 어떤 인간 시인이 한 말이야.”
“국가의 위대함은 관념으로 정의되지 않소, 야쿠프. 그림으로 정의되는 겁니다. 입과 텔레비전으로 이야기가 전달되고 인터넷으로 영원히 남게 됩니다.”
혜성은 우주의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존재이자 수백 년에 걸쳐 손수레를 밀고 다니며 꾸준히 은하계 사이의 쓰레기를 담는 부랑자이기 때문이다.
“말라깽이 인간, 정신적인 고통을 일으킬 수 있는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
“나한테는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어.” 나는 하누시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간절하게 인간인 후손을 원하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속극이라는 꾸며낸 프로그램에서 보기로는, 너희 종족은 성적인 관계를 오로지 번식을 위해서만 맺는 것은 아니던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보험을 들어두는 거지.” 내가 말했다.
지금 나는 때를 기다리는 시체였다. 죽음이 이렇게 가까워지면 몸은 성가신 영혼 없이 영원한 안식에 들기를 고대한다.
나는 이기적인 남편이었다. 천재적인 아이를 낳지도 세계 평화를 이루지도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는 살면서 뭐라도 만들려면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남자들에 속했는지도 몰랐다.
“자기 손으로 직접 집을 짓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내가 야망을 보는 방식이 암이었음을, 그래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야망이 날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네. 유명해지고 싶나, 야쿠프? 난 그랬어. 내가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교실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랐지. 평생을 불행하게 산 덕분에 어떤 교수가 내 이름을 못 외운 학생들 이름을 칠판에 적고 벌을 주는 거야. 대단하지 않나?”
어렸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잔디를 깎을 때마다 칼날이 돌아가면 가능한 한 멀리까지 달아나곤 했다. 새로 패서 쌓아둔 장작들 사이에 있는 나무 헛간에 숨어서 나무의 시원한 냄새를 들이마셨고,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뽑아냈다.
이 우주선은 마치 믿음만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지도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우리 사이에서 끝없이 멀어지기만 하는 우주의 틈 너머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아내가 옳았다. 나는 지구의 사람처럼 느끼기에는 너무 많이 변했다. 복잡한 인간의 감정은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 같았다. 나는 내 여행을 전혀 설명할 수 없었고, 내가 누군지도 설명할 수 없었다. 이런 귀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우린 그렇게 되도록 할 수 있었지만, 그저 그렇게 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원하지 않았던 거예요.
저는 도시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걸어다니던 다정한 남자와 결혼했어요. 그리고 그는 우주로 갔죠. 대단한 삶이에요. 놀라워요. 멋지고, 동시에 끔찍해요.
나는 혁명의 일부가 아니었다. 나는 버려진 건물 옆구리에 남은 슬로건이었고, 기후 패턴과 분위기의 변화에도 입을 다물고 있는 목격자였다.
나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복원하는 화가가 될 것이다.
침묵이 내 근육에 침투해 근육의 섬유를 풀어헤쳐 몸이 쓰리면서도 편안하고 따뜻해졌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힘은 조그만 불꽃뿐이었다. 나는 우주의 속삭임을 막을 수 있는 댐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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