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피, 열, 단시엘W. 모니즈, 모모, 2023(초판 1쇄)
어중간한 신들은 술과 꽃으로 숭배받는다.
그러나 진짜 신들은 피를 요구한다.
-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엄마의 따스한 갈색 얼굴에 입 맞추고 싶었다. 손바닥이 얼얼할 때까지 후려치고 싶었다.
하도 가까이라 그의 숨결에서 잠 냄새가 난다.
지금의 나는 우리가 결혼하던 때에 그가 알았던 나라는 여자애의 희미한 자국과도 같고, 네모나게 벌린 흉측한 내 입은 마치 검은 동굴 같다.
아이들은 바닷새마냥 깍깍 소리를 내고 파도가 기슭에 닿을 때 같은 에너지로 부모에게 달려와 부딪친다.
나는 죽은 위성이라서, 정보를 받을 수는 있어도 어떤 것도 다시 전달할 수는 없다.
“당신은 내 임신을 바란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 순수한 혈통을 더럽히기 싫어서 말야.”
내 비아냥에 히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질질 끌고 가던 그 가느다란 선을 내 스스로가 이제 막 넘으려 한다는 걸 느꼈지만, 최후의 만찬처럼 흡족한 이 분노가 꽤나 달콤했기에 스스로 갉아먹기를 멈출 수가 없다.
물이 가장 무거워 보이는 어느 어둑한 방에서 나는 유리에 머리를 기댄다. 잠시나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 기억이 날 듯하다.
그 주 일요일 새생명제일침례교회의 긴 의자에 앉은 제이와 남동생 더크 사이에는 부모가 북엔드처럼 끼어 있는데도 더크는 손가락들을 제이의 손 안으로 스륵 밀어 넣어 제이의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눈을 떠보니 체중은 여전히 똑같았다. 95킬로그램. 안에 모든 죄들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도.
손에 쥔 핀을 이리저리 굴리며 컴컴한 방마다 들어가 서성거렸다. 그가 벌거벗은 상태라는 사실이 복도에서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타인의 치욕이야말로 수많은 관중을 끌어모으는 진정한 구경거리 스포츠니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프랭키의 모습이 갑자기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단지 엄마가 아니라 한 온전한 인간으로. 두려움 가득한 별개의 존재. 나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엄마에게도 지구상에서 처음 보내는 시간이라는 걸 마고는 문득 깨닫는다.
그해 여름 우리는 아홉 살, 열 살이었고 우리 둘의 생일은 마치 서로의 등을 타넘고 놀 듯 연이어 뒤엉키며 지나갔다.
“여자는 모든 것에서 악마들을 보니까.”
“물론 그것들이 코앞에 있을 때는 못 보지만.”
빌리가 생각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타안의 삶이 자기네한테 들어맞지 않으면 그 삶에 대해서는 조금도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빌리의 결론이었다.
모든 생명의 기원이 아프리카라는 이야기는 당연히 들어보셨겠지만, 그게 진짜 무슨 뜻인지도 생각해보셨어요? 그건 그러니까, 최초의 신들 역시 흑인이었다는 뜻 아닐까요?
강물처럼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마치 필사적인 돌멩이들 같았다.
그러자 번개를 끌어모으는 종류의 침묵이 뒤따른다.
헬렌은 대체 왜 성가시게 나를 가졌던 것일까 의아해했다. 지금까지 헬렌이 만났을 남자친구들의 수와 씨앗 상태로 삼킨 그 수많은 아이들의 수를 헤아려보았다. 얼마나 간단한지. 나도 그냥 삼켜졌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나뭇잎에 헬렌의 코끝이 스치는 바람에 헬렌 주변에 우수수 떨어진 잎들이 붉은색으로도 갈색으로도 변하며 헬렌의 발아래에 예전 자아들의 시들어버린 뼈대를 떨궜다.
엄마는 내게 용서를 구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자기 성정에 대해 사과하기에는 너무도 자기 자신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나무와 열매였다. 엄마가 얼마나 오래 떠나있었던들 내 몸은 늘 알고 있었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SPACE공간 _ ISSUE 683 _ Between Destiny and Skepticism: Chung Isak + a.co.lab architects (0) | 2024.11.08 |
---|---|
스켑틱 _ VOL.39 _ 상상이 세상을 바꾸다 (0) | 2024.10.28 |
우울한 마음도 습관입니다 _ 박상미 (0) | 2024.10.20 |
넛지 _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0) | 2024.10.10 |
스노볼 드라이브 _ 조예은 (0) | 2024.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