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나무옆의자, 2024(초판 7쇄)

 

 

 

 

 벨이 울리고 있었다. 엄마가 또 머리맡의 벨을 누르는 모양이었다. 명주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로 누워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데도 엄마가 계속 머리카락 몇 올을 틀어쥐고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명주는 만 원이라도 싼 고시원을 찾아 방을 옮겨 다녔다. 기초수급자 신청을 해보려 했지만 원인불명의 통증으로는 의사로부터 ‘근로능력불가’라는 평가를 받기가 어려웠다. 가난을 증명하는 것도 어렵고 수치스러운데, 몸이 아프다는 걸 증명하는 건 더 복잡하고 굴욕적이었다.

 

 

 명주는 702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고3 때 쓰러진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학교를 잠시 쉬었고, 전문대학 물리치료학과를 다니며 국가고시 자격증 준비를 하던 중 아버지가 다시 쓰러졌다고 했다. 물리치료사가 되어 병원에 근무하는 게 꿈이었는데 자격증도 못 따고 쌓아놓은 스펙도 없이 20대가 다 가고 있다고. 지금은 대리운전과 간병을 병행하고 있지만 힘에 부친다는 얘기를 띄엄띄엄 풀어놓았다 지난주 물리치료사 시험을 치렀는데 너무 긴장해 망친 것 같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명주는 702호가 커피잔을 내려다보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에 불어 붉고 뭉툭한 그의 손을 보니 단체급식 조리실 동료들이 떠올랐다. 명주는 702호의 등이라도 투덕투덕 두드려주며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머릿속을 파고드는 건 불길한 미래의 모습이었다. 열심히 바위를 굴려 올리며 살아가겠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끝을 알 수 없는 추락뿐인 미래.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차라리 고아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간병은 그 끝이 너무나 허무하고 너의 젊음을 앗아갈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처음엔 명주도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엄마를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겪는 모멸감에 비하면 내 엄마를 간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 안에 있는 자비심이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했던지. 명주는 엄마를 돌보기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대리 고수들 중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겪어보니 인간들 중 8할은 보통 사람이고, 1할은 뼛속까지 못된 사람, 1할은 좋은 사람이라고. 

 

 

 모든 건 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잖아.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않게 엄마가 아버지가 쓰러지고 돌봄은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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