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광고홍보학과를 복수전공했다.

카피라이터가 되려고 한 것이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이,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적어도 내게는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름의 글을 쓴다는 것, 본류인 문학청년으로서의 나와

카피를 쓴다는 것, 또 다른 본류가 되길 바랬던 카피라이터로서의 나는

학창시절에는 잘 동승해서,

오규원 시인처럼, 시속에 광고미디어나 마케팅시점, 냉정한 사회풍자를 넣고

카피에는 시적 감성을 은근히 넣어서 잘 넘어갔다.

 

문제는 졸업하고, 몇 군데 원서를 넣고, 소식이 없자,

졸업한지 두 달 만에 별로 카피라이터가 안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되었으면 지금 하고 있겠지만,

나름대로 카피라이터라고 일하고 있는 신사동의 세 친구나

또 여기저기 홍보실, 홍보팀에 근무하는 친구들을 보면

뭔가 좀, 지겹다. 돈은 많이 벌어 부럽다만...

 

기본적으로 광고의 마인드는 다음과 같다. 절대적이다!

"규칙 1. 고객이 항상 옳다!"

"규칙 2. 고객이 틀리면 규칙 1을 읽어라!"

(데이비드 오길비)

 

그런데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하면서 늘 힘들었던 것이 뼛속 깊이 내 마인드는 다음과 같다.

"그들보다는 내가 옳다!"

"군중이란 가장 불만족스런 인간의 형태"

(김원국)

 

한 마디로 다수의 소비자, 군중, 무리, 를 본능적(습득된 본능일지라도)으로 나는

혐오하고 있다는 말씀.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멋쟁이 카피라이터는 

베네통 광고 같은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한국에 광고인들중 베네통 광고를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만

하고 있거나 할 수 있겠다고 할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내게 광고카피를 가르쳐 준

제일 기획의 이선구선배는 술자리에서 말하길

"카피라이터는 저마다 문학을 한번씩 꿈꿔왔기 때문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를, 아직까지도 못이룬 꿈으로서 바라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일종의 컴플랙스처럼"이라고 했고,

 

"언론정보학의 영역에서 전통적으로 광고는 언론영역에 비해 인식상의 천대를 받아온 경향이 있다. 아직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는 광고인의 파워가 언론인의 파워 이상으로 드러나는 상황을 많이 목격한다. 어느 장소에 이들이 한데 모여있을 때, 광고인이 언론인보다 더 대우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도 했다.

 

이렇든 저렇든,

적어도 국문학과 광고홍보학과를 다녀본 나로서는

국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보다는 광고홍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시간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문학과 학생들은 설렁설렁한 면이 많다.

나도 그렇고.

 

재밌는 건, 국문 3-4학년이 되어 열심히 도서관에서 노력하여 공부하는 학생들이

목격되기도 하는데, 정작 이들은 다른 실용학과 복수전공을 하거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거나, 토익준비를 하거나, 자격증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국어학과 국문학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기 어렵다는 말.

 

그래도

언론정보 교수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학생은

기본적으로 현지인처럼 영어를 구사하며, 그 외에 다른 외국어를 비지니스 회화 가능 정도로

할 줄 아는 학생이니... 광고공부하려는 학생들도,

영어학과나 스페인어학과나 불어학과나 등등 언어학 계열 학과의 침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괴로워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광고란 모든게 들어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학문"이라던가...

한림대학교 윤태일 교수가 말했음.

 

추신: 이선구 선배는 늘 내게 전화 하라고, 연락 하라고, 술 한잔 하자고, 하는데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제일기획 차장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다 알고, 또 늘 수업, 광고 관련 대화만 했던지라, 대화 소재에 어느 정도 물려있기도 하다. 게다가 선배는 늘, 결국은, 원국아 광고해라~ 라는 식으로 가고, 나 역시 네~ 이렇게 대답하니까, 그래야 할 것 같으면서도 부담스럽다. 이선구 선배는 내가 최초로 마신 헤네시 꼬냑을 사준 사람이기도 하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다만 내가 사람을 별로 안좋아한다는게 우리 사이의 치명적일 수도 있는... 거시기다. 공통의 취미라면, 달리기와 문학이 있는데, 달리기에서 나는 10km 단축 마라톤 레벨이고, 이 선배는 풀코스 레벨이다. 문학에 있어서는 사실 별 대화를 해보지 않았다. 나는 문학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있는게 문학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문학은 그냥 하는 거다. 대해 얘기하는 건, 대해 얘기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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