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쓰던 것을 다 써버렸다. 두 달도 채 안걸린 것 같다.
돈은 없고 맘에 안드는 수첩은 질색하는 럭셔리한 성격이라
예전에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수첩,
쓰다가 헤어진 이후로 덮어두고 더이상 펼쳐보지 않던 그 수첩,을
다시 꺼내서 쓰고 있다. 그때는 이 수첩에
무언가를 더 적어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돈이 바닥난 럭셔리한 성격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꾸부정하게 앉아서
옛 페이지를 넘겨가고 있자니 어디선가 가수 페이지가 노래라도 불러주는 것 같고
비가 똑똑- 떨어질 것 같다.
암튼,
그때 몇 년 전에 적어 남기려 했던 사고, 낙서, 그런 것들 중
몇 개를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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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 사르트르
(표지 바로 다음 장, 첫 페이지에 적어놓은 글귀다.
여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수첩에 타인은 지옥이라고 적어놓는 이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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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첫 페이지의 뒷면이다. 어디서 본 걸 적은 건지 내가 떠올린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떠올린 거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 말은 억지! 라도 용기를 내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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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4:55
정가영이 "바보 같다" 놀림.
복수해야지.
오른발로 때리고 차고 욕함.
물고기를 탐냄.
3/4 18:03
재화가 갈비뼈를 조름.
엉아따라 도서관 오니 신기하지 물었더니
인상 잔뜩 씀.
(당시 일종의 협박노트를 작성했다. 내게 불쾌하게 대한 후배들의 행적을 기록한뒤에
이것을 너희들의 선배이자 나를 잘 따르는 후배, 즉 중간 기수들에게 이른다!
고 협박하여 밥과 음료를 얻어먹었다.)
3/5 14:00
배기원 내게
"유머가 그게 뭐야! 아직도 그렇게 살어?" 라고 말함.
3/5 18:15
박병철 내 우유를 빼앗으려 함.
2002년 가을 술 사준다 하고서 아직 안 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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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은 사라져야 한다- 지구정복대>
악당은 다유
주인공은 수예
"지구가 너무 빨리 도는 게 아닐까"
"왼쪽 세상만 보던 왼쪽눈과 오른쪽 세상만 보던 오른쪽눈을 바꿔 끼는 거야. "
친구 : "너무 큰 야망 아냐?
악당 : "야망이라니! 꿈이 좀 작아진 것 뿐이야."
남자1 : "칠판은 존재하는가"
(나름의 라디오 방송대본을 스케치하다 말았음. 뭘 말하려 했던 건지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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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이름
루이 (눈물의 이치)
제논 (문제를 논하다)
불루 (울지 않는다)
도노반 (성난 길의 반쪽에서)
파애 (슬픔을 부수다)
밥 (성을 붙이면 김밥이다)
(형이 이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캐나다에서 쓸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 생각이 나게 한국말이면서 외국발음이 나는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이름을 지어주고서 10만원을 받았는데, 결국은 자기가 생각한 이름을 쓴다.
그때 생각하던 형의 이름들이다. 지금 형의 이름이 찰리던가 뭐던가...
개이(열린이로움)-라고 지어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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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통 같은 어머니
(이 구절을 생각해놓고 이걸 어떻게 시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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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다는 것이 창작에 도움이 될까
일단 내가 취한 것 같은데
창작해볼까
촛불이 미쳤나?
몸에 불을 지르네
(취해서 이런 걸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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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외설스런 벨소리 Anycall
뼈! 뿌러지는 소리 Anycall
(당시 내가 쓴 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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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습작시가 열 몇 개 적혀있다. play에 올려야지. 아주 거친놈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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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는 얼굴 가면
2. 창가로 걸어감
창문을 염
비가 내림
3. 옷을 벗음
남방
셔츠
바지
추움
4. 뒤로 걸어감(느리게)
총을 집음(느리게)
창가로 옴
머리에 총을 들이댐
쏘다 (빠르게)
느리게 미끄러짐
창틀에 목을 걸침
(광고 수업시간에 '새로운 것'을 찾아와서 발표하는 것이 있었다.
내 순서였는데 이것 저것 찾기 귀찮아서 앞에 나가 마임공연을 했다.
이렇게 엉터리로 이렇게 진지하게, 게다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강의실 앞에 나가 마임을 공연하는 학생은 새로운 것 맞지 않나 싶었다.
이것은 마임용 대본 쓴 것.
마임은 내 행동과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위의 대본의 경우, 나를 보여줄 뿐 아니라, 마임에서는
창문과 비와, 옷들과 총과 총소리를 보여줘야 한다. 없는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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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갈수록 나는 내가 도처에 있음을 느끼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
"이제 내 육체 속에는 내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
- 파스칼 키냐르 <로마의 테라스> 중.
"내가 당신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당신을 잃은 방식 때문에 고통을 느낍니다."
- 엘로이즈의 편지 중.
"나의 할머니는, 수돗물도 씻어 드시는 분이었다."
- 친구가 술자리에서 한 말.
"바깥엔 하늘만 바라보다 더러워진 태극기"
- 내가 쓴 하이쿠.
"사람의 손이 아무 도움 없이도 입을 찾아내듯이
내 몸은 주인에게서 버림받더라도 제 집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아닌가..."
- 친구 효상이가 술에 취해서도 집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줌.
- 또, 마찬가지 이유로 사람은 주님에게서 버림받더라도,
입이 손을 찾아가듯이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음을 책장처럼 접어놓고 다닌다."
"살아있다, 할부금처럼"
"전화번호부처럼 걸어다니는 사람들"
"계산서처럼 계단에 쭈구리고 앉아서"
- 내가 한 말들, 나중에 시 쓰려고 했는데... 글쎄.
"비유는 천재의 증명이다."
- 김은자 교수님이 해준 말, 원래는 프랑스의 어느 시인이 한 말이라고 한다.
(이것저것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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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사랑한 남자>
초 인기 게이머가 꿈속의 여인을 짝사랑하며
현실의 초스트레스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꿈 속의 여인이 현실로 오는데 다만
이 여인이 고양이로밖에는 현실로 올 수가 없다.
진짜 고양이. 말도 안통하는 고양이와 진짜로 사랑에 빠지는
초 인기 게이머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괴로운
러브 스토리.
에피소드 중. 공원으로 도망간 고양이를 찾아 전철에서 내림.
공원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남자발견.
자신의 애인이 죽어 묻혔는데 그 주위에 꽃을 수천송이 심어놓았다.
무덤까지 가는데 꽃이 상할까봐 물구나무를 서서 가려고
2년 째 연습중이라는데...
(시놉시스도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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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뭘까
사실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종구 - 17만
윤진 - 18만
방세 - 13만
핸드폰 - 11만
(위의 두 문장 밑에 값아야 할 돈이 적혀있다. 물론 핸드폰비는 밀린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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