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50 잠에서 깼다. 알람 소리를 듣고. 기억나지 않는 악몽의 뒷맛을... 즐길 수는 없었다.
멍하니 누워서 형광등이 켜있는 것을 알았다. 언제 켰을까, 내가? 다른 누가?
07 : 15 이빨 닦으면서 똥을 싸려고 했는데 마렵지 않았다. 소화기관에 리듬이 달라진 것 같다.
샤워 하는 중에 바깥 빗소리가 들린다. 비가 오는구나. 더듬거리며 비누를 집었다.
벌써 한 달 반 째, 화장실 불이 켜지지 않는다. 전구가 나갔는데 아무도, 나도, 갈아 끼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 두 번, 이 순간만 견디면 된다고 생각한다.
07 : 30 TB에게 문자를 몇 통 보내고, 거울을 잠시 보다가, 옷을 입는다. 어젯밤 미리 챙겨놓은
세미 힙합 청바지와 스판 검정 긴팔 라운드 셔츠. 가방이 무겁다.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두 명의 여자만으로 가득하다. TB와 어머니.
07 : 45 제기역에서 의정부행 열차를 탔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걸음이 많이 무겁지는
않은지 체크한다. 많이 무거운 날은 다리 관절이나 허벅지 근육을 열차 안에서
풀어준다.
08 : 00 일하는 곳을 500m 가량 앞두고서 제과점으로 들어갔다. 말없이 700원짜리 빵을 집어
동전을 모아 내고 나온다. 그리고 옆에 슈퍼마켙에 들어가서 우유 속에 모카치노
하나와 흰우유 하나를 들고 카운터 앞에 가서 섰다. 점원이 잔돈을 거슬러주고,
봉지에 우유를 담아주고, 안녕히 가셰요, 하길래
"안녕히 계세요."
하고 대답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처음 낸 목소리고 처음 한 말인데, 그것이
안녕히 계시라는 헤어지는 인삿말인 것이 맘에 걸린다.
잠이 덜 깬 목소리가 슬퍼보였다.
08 : 10 일하는 곳까지 우산을 쓰고 500m를 천천히 걷는 동안, 노란색 유치원 버스 한 대를
보았다. 안녕, 혹은 안녕히 계시라고, 내가 인사한 그동안의 사람들은
모두 안녕히 그 자리에 잘 계시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토록 사랑하는 누구에게 한 안녕도
스쳐가는 누구에게 한 안녕도, 하기 싫지만 예의상 한 안녕도, 그들의 안녕을
꼭, 손잡아 약속해주거나 껴안아 주지 않는다.
어깨에 맨, 그리고 자꾸만 흘러내리는 가방처럼, 안녕이라는 말은 주룩 떨어지고
빗물에 섞여 웅덩이 흙알갱이 밑에서 납작하게 찢어지는 것 같다.
09 : 59 조금 전까지 58분이었는데, 어느새 안녕, 떠나가고 59분이다. 이 글을 마칠 때
쯤이면 9시도 7층 병원에서 창문 밖으로 떨어뜨린 종이비행기처럼 몇 발자국
날다가 비를 맞아 떨어지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 밖으로 나가면 이미 누군가
밟아 헝크러져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간,
이제 몇 일 남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에, 안녕, 이라든지, 안녕히 있으라든지,
그런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물론 그건 다만 모종의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슈퍼마켙의 점원이 아니고, 때로는 웅덩이에 손을 담가 헝크러진
종이비행기를 꺼내 집으로 가져와 말려서 간직하는, 울적한 동네 아저씨이기도
하기 때문에 안녕, 이라는 말을 듣고 견디기가 쉽지 않다.
00 : 00 어느 순간, 두 개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데, 하나는 TB, 하나는 어머니.
어머니로서는 야속하시겠으나 딱히 어느 쪽과의 이별이 더 슬플 거라고 장담 할
수는 없다. 이별 하기 전의 시간, 이별한 후의 시간은 분명히 있을 텐데
정확한 이별의 시간은 존재하는 지 모르겠다.
이별이란, 안녕, 했을 때 녕- 하고 울리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구르다 멈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근 두근, 그 목소리의 방울을 받아 들이다
멈췄구나, 싶은 고요 속에 방치 되어 있음을 알게 될 때,
그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