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렛은 늘 공교로움을 연출한다.

 

내가 초코렛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먹으면

무척 싫어하는 살찐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 좋아하는 것을 늘, 참고, 참고, 한 번 더 참고,

무척 허기진 날이나, 스트레스가 맨홀 뚜껑만큼 생겼을 때만

초코렛을 먹는다.

 

좋아하고, 값도 그리 비싸지 않은데 이것을 먹을 수 없다니, 공교로운 일이다.

 

오늘, TB님이 초코렛이 먹고 싶다고 해서

어떤 초코렛? 했더니

아무 것도 안든 그냥 초코렛! 이라고 해서

500원 짜리 해태 파리지엔느 초코렛을 사다주었다.

 

공교롭게도 이 초코렛을 나는

아무도 모르게 TB에게 전해줘야만 했는데

아무도 모르게 초코렛을 받아 집에 왔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melt가 생각난다.

 

그때 너무 떨려서 땀이 흠뻑 났고

행여 누구에게 들킬 세라 가방에도 넣지 못하고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몇 시간이나 지나 집 앞까지 왔더니

초코렛 포장종이가 땀으로 다 젖어 있었다.

 

포장을 벗기니 그 당시 200원짜리 가나초코렛이었고

당시 광고 카피가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었나, 그랬다.

그리고 작은 쪽지가 들어있었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어젯밤 방구석에 엎드린 채로 나는 TB에게 줄 쪽지를 만들었고

종이를 오려서 프린트된 내용을 붙이고 뒷면에 그림을 그리고

투명 테이프로 발라서 카드처럼 만들었고

적당한 봉투가 없어서 긴 한지 편지봉투를 반 잘라서

네모난 카드봉투를 만들었고

납작해지도록 수첩에 눌러 놓은 채로 오늘 주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초코렛은 무슨 기념일이나 뜻 깊은 날, 메시지의 전달 혹은

선물용으로 주고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코렛과 관련되어서 공교로운 우연, 공교로운 난처함, 공교로운 사건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을 것도 같다.  

 

아무튼, 초코렛 하나도 다 먹어치우지 못하고 남기는 TB가 그렇듯

내 마음도 다 먹어치우지는 말고 좀 남겨 놓아야 할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있게 먹어줘야 할텐데, 초코렛이든, 내 마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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