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사실 오래 전부터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마주친 누군가에게 삶의 비밀을 듣고 싶어 했다는 것을 어제 떠올렸다. 덕수궁 대림 미술관에서부터 제기동까지 땀 흘리며 걸어오면서 이렇게 줄줄 땀이 흐르는 것이 눈물 대신 흘러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세미 정장 바지와 renoma 남방이라는 어지간해서는 입지 않는 패션에 향수를 뿌리고, 어지간해서는 하지 않는 목걸이까지 하고 나갔었기 때문에 바지가 무겁고 남방이 잔뜩 구겨져서 마치 잔뜩 구겨진 유리를 보는 것 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느 순간, 긴 시간 혼자 걷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하는 의식, 무언가를 단념할 때 행하는 의식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고교 시절 잔뜩 쏟아지는 비를 교복 입은 채로 흠뻑 젖어서 운동화 철벅거리며 몇 정거장을 걸어오던 것은, 당시 내 여린 삶의 한 단락을 쥐어짜거나 잡아 뜯어내는 행위였다. 어제는 씩씩거리며 걷다가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괜히 지나가는 자동차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뻗쳐 난도질하기도 했다.

 

도중 에드윈 매장에 들어가서 맨 앞에 있는 민소매 티를 하나 집어들고 당장에 남방을 벗어 던지고 그 티를 입고서 걸어왔다. 남방 혹은 와이셔츠란 것은 보통 삶의 단락을 더이상 찢어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입는 옷이거나, CIA나 영국첩보부와 같은 스파이들이 입는 옷이다. 나는 수퍼맨이 남방을 벗어던지듯이 남방을 벗어던졌지만, 하나도 수퍼하지 않았고 밤길은 뜨거웠다.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비밀을 알고있는 아저씨가 있어서, 내게 삶의 비밀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믿으며 걷고는 했다. 그것을 어제 겨우 떠올렸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지하도 바깥으로 기어나와 잠든 노숙자들을 여섯 명이나 보면서 저 중에 비밀을 아는 아저씨가 있을까, 타고야끼라도 사다주면 그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걷고 걸어서, 어느 순간 삶을 움켜쥐고서 찢어낼 듯 씩씩거리는 젊은이에게 삶의 비밀을 말해 줄 수 있는 아저씨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어제 얻은 삶의 비밀이란, 짐이 가벼워야 걷기다 편하다는 정도이고, 맨발에 런닝머쉰 위를 달리면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 연한 살가죽에 물집이 금방 잡혀 따갑다는 정도이다. 어제는 별이 없었는데

 

스무 살 때, 제주도 승무장에서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을 목격한 어느 밤, 가출해서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를 서너 시간을 걷다가 무서워져서 꼼짝 못할 때 한 가득 딸기나무처럼 빛나던 별빛들이 그리워졌다. 당시 나는 삶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기는 알게 된 것이었는데, 시작부터 더러운 비밀이었고, 삶을 번듯하게 살아내기와 깨끗하게 살아내기가 무척 부합되기 어렵다는 것을, 특히나 돈을 벌고 무엇을 사고 파는 관계에서는 특히나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비밀을 알고 있는 아저씨는 만나지 못했고, 집 근처에서 술 두 병을 사서 동네 공원이라도 가서 마시고 싶었는데, 이 멍청한 동네에는 화원도 없고 공원도 없다. 집에 가서 마시고 도중에 잠을 깨지 않도록 수면제를 채워넣듯이 꾹꾹 배 한 가득 채워 마시고 잠들었는데, 그럼에도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 슬펐다. 잠과 꿈 조차 나를 멀리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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