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여자 동료 하나가 넘어져서 최소 3개월 입원 예정이다.
찻길에서 인도로 올라오던 중 넘어져서 그 둔턱에 어찌 어찌 잘못 넘어져서
발목이 부러졌는데 공교롭게도 양쪽 모두 부러졌다.
어이 없음과 안됐음 등의 얘기를 하던 중,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혼자 걸어가다가 넘어져서 양쪽 발이 부러지냐,에 대해
납득이 어려웠는데, 스무 살 짜리 아르바이트 애 하나가
"무거워서 그래 무거워서"라고 말해서 살짝 납득이 가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꽤나 운동부족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길 가다가 넘어지는 것도 그렇고, 넘어졌는데 다리가 부러진 것도 그렇고
상당히 몸이 약화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은하철도 999의 메텔처럼 가냘프고 한없이 연약한 여자를 좋아했다.
지켜주고 싶은데다가, 약한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다고
느끼기도 했다. 음.
한 번은 짝사랑하던 여자애의 자취집에 자주 놀러다니던 때,
이 여자애가 한없이 가냘픈 타입의 여자애였다.
이 애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나더러 저것을 잡아 달라고 했다.
저것의 정체는 바퀴벌레.
휴지를 접어 바퀴벌레를 잡았더니 죽이란다, 그것을.
그리고 변기통에 빠뜨려서 흘려 보내달라고 했다.
본인이 연약해서 벌레 한 마리 못죽인다면 그건 뭐 어떻게 이해하겠는데
그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살생을 부탁한다는 건 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지간히 그때 기분이 안좋았는지 벌써 수 년이 지났는데도 그 때만큼은 생생하다.
오늘 그 스무살 짜리 남자 알바 녀석이 일찍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다.
팔에 붕대를 감고 나왔는데 어설픈 것이 자기가 직접 감은 거라고 하면서
상처를 보여줬다.
퍼렇게 붓고 다친지 3일이 되었는데도 움직이지를 못하는 걸 보니
최소한 금이 갔을 것 같았다.
3일 전 새벽 5시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뒤에서 튀어나온 택시가 자기를 박았단다.
그래서 한 쪽으로 튕겨져 나가 쓰러졌는데 인상 쓰면서 고개 들어보니 택시는 이미
도망가고 없더란다.
그리고는 손가락 하나 꿈쩍 못하고 퉁퉁 부은 채로 3일이나 낫겠지, 하면서 기다리다가
낫지 않길래 병원에 간 것이다.
이걸 터프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보니까 관절 부위라서 잘못하면 후유증이 남겠다.
때로는 약하다는 것이 천성의 약함이 아니라
도피나 회피, 안주로 인한 약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뛰기 싫고, 땀 흘리기 싫고, 근육통을 참아야 하는 것이 싫고,
싫어서 몸을 약해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나름대로 멋진 형태의 자기 개발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걷다가 두발이 똑 부러지면서 생기는 파장이
꼭 아름다울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더군다나 약하기 때문에, 남이 그것을 대신 해주어야만 할 때,
그 약함은 아름답지 않은 약함이다.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물 (0) | 2005.08.09 |
---|---|
<선물 2>는 비공개로 바꿨어요. 감사. (0) | 2005.08.08 |
새빨간 여행기 (0) | 2005.08.08 |
크리스피 크림 도너츠 (0) | 2005.08.08 |
지구를 지배하고 싶다 (0) | 2005.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