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경우 대부분 화실에서 자화상을 그렸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그림에서 술집 냄새를 맡고는 한다.

어쩐지 그는 화실에 앉아 거울을 통해 자신을 그리면서도 실제로는

변두리 골목 술집에 앉아 압셍트를 마시는 자신을 떠올리고 그렸던 것은 아닐까.

 

 

 


 
이 그림을 그린 곳은 일산에 있는 찜질방이다.
지난 주 마지막으로 TB를 보았던 날
새벽에 찜질방 지정복을 착용하고
그린 그림.
 
연수를 마친 뒤에도 TB를 만나기란 어려워서
간혹 집에 바래다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녀의 집이 일산이라서
밤에 데려다 주고 나면
나는 주변 찜질방에서 잠을 잔다.
 
코가 썪을 인간들(코고는 인간을 말함)
만을 제외하면 찜질방에서 자는 건 나쁘지 않다.
바로 조금 전에 미로와 관련된 책의 한 부분을
읽었는데
 
알고리듬으로 미로를 보았을 때와
실제 미로 안에 들어갔을 때는 무척 다르다고 한다.
나는 잠시
내가 갇힌 미로를 생각해보는데 그것은 이렇다.
 
TB라는 출구가 있는데
이 출구는 너무 바쁘고 그 출구의 성격상
당장 가까이 있는 집단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다.
 
즉, 남자친구가 옆에 있으면 그에게
회사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그들에게
가족이 옆에 있으면 가족에게
내가 옆에 있으면 나에게 최선을 다한다.
 
내가 옆에 있을 때, 남자친구나 집에서 전화가 오면
전화를 잘 안받는 경우도 있다.
미로는 복잡해지기 보다는 컴컴해져서
오늘로 4일째,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 찾지 못했다.
 
전화를 걸고 TB가 받지 않거나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으면
더더욱 TB가 왜... 라는 식으로 헤매기 때문에
앞으로는 내가 먼저 전화나 문자를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4일 전에.
 
그렇게 말을 한 날 찜질방에서는 야구 중계가 한창이었고
취침실에는 300kg의 돼지 두 마리가 코를 골았고
나는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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