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기 그지 없이 11시간을 퍼 자고
그나마 자세가 안좋았는지 왼쪽 날개뼈 부위가 욱씬 욱씬.
오늘은 친구가 밤에 와서 지정환 임실 치즈 피자를 사준다고 해서
오늘의 일은, 친구가 방에 와서 지정환 임실 치즈 피자를 사주기를 기다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정신'이라는 분은 일종의 고급노예로서
써주지 않으면 녹이 쓴다고 하니까
누워서 배를 척,척, 두드리며 '정신'의 땅파기, 돌줍기, 서성거리기 등
즉,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있다.
이렇게 빈둥거리는 나도 뭔가 한국 최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니, 이건 너무 약한 모습이라고, 나는 이미 어느 분야에서 한국 최고 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찾기가 힘들어서
범위를 좁히고 좁혀본다.
일단은 나도 문인협회에 이름이 올라있을 테니
한국 등단 시인 대략 4만 명 중에서 뭔가 최고가 되면
"한국 최고 ( ) 시인"이 될 수 있겠지.
한국 시인들이라면 늙은이들이 많고,
죄다 운동과는 담 쌓은 듯한 모습이고 뭔 병이란 병은 하나씩 죄다 걸려 있을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니까 나의 싱싱한 육체로 밀고 나간다면 되겠다.
"한국 최고 몸짱 시인"
음하하.
시인이라서 다행이야.
내가 만약 수학선생이었다면, 한국 최고 몸짱 수학선생이 될 수 없었을 테고,
마찬가지로 무슨 기술자건, 샐러리맨이건 한국 최고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혹은 이런 건 어떨까.
"한국 최고 느끼한 것 잘 먹는 시인"
도미노 스위스 퐁듀 피자, 한 입 베어물면 노란 치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것을
나는 한 번에 여섯 조각이나 먹은 적도 있으니까.
파스타라면 크림소스만 먹는 데다가, 크림 소스를 남기는 법이 없고,
빵에 발라먹는 크림치즈 같은 경우, 빵 없이 숟가락으로 떠먹으니까 말야.
혹은 이런 건 어떨까.
"한국 최고 경보 잘하는 시인"
"한국 최고 어색하게 아픈 표정 짓는 시인"
"한국 최고 코미디 TV프로 좋아하는 시인"
"한국 최고 시 안 읽는 시인"
"한국 최고 만화책 좋아하는 시인"
"한국 최고 동해 바닷가에 가고 싶어만 하는 시인"
"한국 최고 암기력 떨어지는 시인"
"한국 최고 맞춤법 헷갈리는 시인"
"잘만 하면 한국 최고 문자 빨리 날리는 시인"
"현재 한국 최고로 전주 기린봉에서 가까운데 있는 시인"
"한국 최고로, 잘 못 쓸 것 같은 날에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대충 써버리는 시인"
화장지
화장지 한 마리가 둘둘둘둘 앉아 놀고 있어요
이만큼 뜯어서 똥 닦고
이만큼 뜯어서 김치국물 닦고
이만큼 뜯어서 마스카라 닦고
이만큼 뜯어서 침 닦고
이만큼 뜯어서 보리차 닦고
이만큼 뜯어서 발톱 닦고
이만큼 뜯어서 밥상 닦고
이만큼 뜯어서 유리 닦고
이만큼 뜯어서 거울 닦고
이만큼 뜯어서 파충류 닦고
이만큼 뜯어서 모니터 닦고
그리고서 잘 못 닦았다고 둘둘둘둘 울고 있어요